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을 사놓고 몇 년째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다. 기계 생명체가 들판을 활보하는 게임 속 머나먼 미래, 인간의 기술 수준이 부족 시대로 돌아간다. 마을에서 소외되어 자란 주인공 ‘에일로이’는 우연히 구세계의 유적을 발견하고, 지극히 발전했으나 현재는 잃어버린 기술인 '로스트 테크놀로지'를 작동시킨다.
'호라이즌 제로 던'을 언급하며 시작하는 김초엽의 에세이 ‘아무튼, SF게임’은 제목대로 SF 게임에 초점을 맞춘다. SF 게임이라는 분류는 다소 생소하다. 소설을 읽는 사람은 “나 SF 좋아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게임 좋아하는 사람은 SF를 콕 집는 경우가 드물다. 게임에서 SF는 장르가 아니라 테마이다. 게임 플랫폼 ‘스팀’은 SF를 공상과학 및 사이버펑크라는 테마로 분류한다. 장르는 중구난방이다. 액션, 플랫포머, RPG, 시뮬레이션... 플레이어는 테마보다 장르를 중심으로 게임을 고른다.
게임은 SF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를 활성화한다. 낯선 세계를 체험시켜 준다는 점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자기네 세계에 퐁당 던져 넣는다. 그리고 규칙, 세계관, 플레이어가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학습시킨다. 에일로이를 움직이는 플레이어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할지 몰라도 점차 게임 안에서 활동하는 데 익숙해진다. 기계 생명체를 사냥하고, 에일로이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며 ‘프로젝트: 제로 던’의 정체를 알아낸다. 그렇게 게임 세계의 일원이 된다. 자기 행동, 선택 하나하나가 게임 세계를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덕분에 게임은 ‘왜곡된 거울’의 역할도 심층적으로 수행한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왜곡해서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현실에 대한 질문을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SF게임’에서는 ‘루도(플레이)와 내러티브(주제)의 부조화’(게임의 재미와 주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전쟁 비판 등의 깊은 주제를 내포한 게임은 그 주제가 게임 플레이와 상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게임을 하는 동안 전쟁과 폭력을 즐기게 되므로 게임의 주제가 흐지부지해진다는 식이다. 이런 간극은 우리 내면의 욕망과 지향점이 상충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그러면 재미와 주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다. 책은 부조화를 수용하는 일이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게임에 푹 빠져 플레이를 즐기는 동시에 그런 나의 모습과 게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현실에 어떤 맥락으로 존재하고, 나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렇게 궁리한다. “재미와 질문 사이에서 부조화가 발생하더라도 그 부조화마저도 다음 질문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라는 매체가, 특히 비현실의 거울을 설계하는 SF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