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데뷔 10주년 기념 이미지와 보라색 티켓이 래핑의 존재감 확 키웠죠"

입력
2024.08.21 11:00
17면
유기웅 제주항공 마케팅팀장
경쟁 심화 항공업계 캐시 카우로 변화
제주항공 기체 래핑 요청 첫 손님? BTS! 
마케팅 효과 입증…특정 제품 광고 시작


"기체를 특정 이미지로 감싼 래핑(Wrapping) 항공기가 요즘 많아졌죠? 과거엔 주로 항공사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춘 홍보 수단 성격이 강했지만 이제는 그 자체로 항공사의 수익을 창출하는 광고매체가 됐습니다."

국내 항공사 가운데 항공기 래핑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곳으로 꼽히는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의 항공기 래핑 기획에 참여해 온 유기웅(42) 마케팅팀장의 설명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애경타워에서 그를 만나 래핑 항공기 변천사를 들었다. 래핑 항공기란 기체에 특수용지로 출력한 이미지나 문자를 덧붙인 것을 말한다.

2005년 설립된 제주항공은 2012년 그룹 빅뱅을 모델로 항공기 래핑을 시작했다. "당시엔 제주항공이 국제선 운항을 본격 시작하면서 한류스타 마케팅으로 해외 고객에게 항공사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컸다"고 한다. 2009년 국제선 운항을 시작한 이후 해외 공항을 오가는 항공기를 통해 국내에 입국하려는 생각이 있는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컸다는 뜻이다. "제주항공은 제주만 간다는 선입견을 깨고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한류스타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항공사가 국제선 취항을 확대하면서 래핑 항공기 모델도 바뀌었다. 배우 이민호(2014년)는 동남아 시장, 배우 김수현(2015년)·송중기(2016년)는 중국 시장, 그룹 동방신기(2017년)는 주로 일본 시장 승객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한다. 취항지를 늘려가며 주로 신규 취항지에서 인기가 많은 한류스타 이미지를 기체에 덧붙여 항공사를 알리는 데 활용한 것이다.

항공기 래핑의 마케팅 효과는 수치로 입증하기 어렵지만 분명 크다는 게 그의 얘기다. 2017년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그룹 동방신기 이미지로 동체를 감싼 항공기가 대표 사례다. 유 팀장은 "한정판 동방신기 기내식을 만들어 예약을 받았는데 내놓은 지 세 시간 만에 매진됐다"며 "같은 해 회사 매출에서 일본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도 올라갔다"고 했다. 당시 와인, 치즈, 모형항공기, 브로마이드 등으로 구성된 '최강창민 와인세트'는 판매 시작 세 시간 만에 동났고 동방신기 이미지를 활용한 기내식 '스위트 핑크' 한정판(500개)도 완판됐다고 한다.

2012년 일본을 오가는 래핑 항공기 기내에는 그룹 빅뱅 멤버의 사인이 들어간 종이컵을 종류별로 모으는 팬도 있었다고 한다. 빅뱅, 이민호, 김수현, 송중기를 표지 모델로 한 제주항공 기내지도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일부 열성 팬은 김포공항 내 제주항공 지점을 직접 찾아와 해당 기내지를 받아 가기도 했다.


BTS "데뷔 10주년 항공기 래핑 하고 싶다"


이 항공사의 항공기 래핑 이미지의 의미가 크게 바뀐 시기는 2023년이다. "이전까지 기체 래핑 이미지의 주인공은 대부분 제주항공이 영입한 광고 모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스스로 해보고 싶다고 손을 든 이들이 생겼고 제주항공은 이들이 원하는 이미지로 기체를 감쌌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었다. "2023년 데뷔 10주년을 맞은 BTS 멤버가 이를 기념하는 항공기 래핑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소속사(하이브)가 제주항공 측에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당시 BTS에 모델료를 따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제주항공은 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인 '2023 BTS FESTA'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호응은 컸다. 당시 제주항공은 BTS 래핑 항공기 도입과 함께 원래 주황색인 국제선 여객기 탑승권도 BTS와 팬덤 '아미'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바꿨다. 여기에 '2023 BTS FESTA'와 BTS 데뷔 10주년을 알리는 문구를 넣었다. 이 탑승권을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속하는 승객에게 주자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 앞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다"며 유 팀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는 "해외로 나간 팬들이 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문구가 새겨진 보라색 제주항공 여객기 탑승권을 앞다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른바 '덕질'(어떤 분야를 열렬히 좋아하며 파고드는 것)을 하며 아미 사이에서 부러움을 산 것이다. 기내에서 탑승객에게 음료를 제공할 때 쓰던 'BTS FESTA' 문구를 새긴 보라색 종이컵도 동났다.

제주항공은 이같이 마케팅 효과가 입증된 래핑 항공기로 특정 제품 광고도 시작했다. "과거 래핑 항공기가 주로 인바운드(외국인의 방한 관광)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 관광) 고객을 타깃으로 한 수익 창출원으로 기능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국내 항공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동안 항공여객 수요 급감에 골머리를 앓았다. 엔데믹 이후 항공 여객 수요가 늘어나면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추진 등 시장 재편까지 겹쳐 업계의 경쟁은 심화했다. 그 결과 항공기 래핑으로 해외로 나가려는 잠재 고객의 시선을 붙잡고 수익 창출도 더 하려는 이들의 몸부림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청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