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부메랑에 큐텐도 흔들···"2000억 자금 조달" 선언만 있고 방법은 없는 구영배

입력
2024.08.13 04:30
10면
싱가포르 등 해외 셀러들도 큐텐 떠나기
국내 셀러 100곳 지마켓 행 검토
전사적 구조조정으로 '버티기'
"사태 장기화 시 큐텐도 위험"
티몬·위메프 합병안 꺼낸 구영배
'월 거래 5000억' 장밋빛 전망
자금 조달 계획은 여전히 빈칸


피해 규모가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티몬·위메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큐텐(Qoo10)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모(母)기업인 큐텐의 정산금 지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국내 판매자(셀러)는 물론 싱가포르·중국 등 해외 셀러까지 줄줄이 손을 떼고 있어서다. 사실상 플랫폼 기능을 상실한 큐텐은 전사적 인력 구조조정 등 비상 경영을 선언했지만 업계에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물음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그룹 오너 격인 구영배 큐텐 대표는 티몬·위메프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큐텐에 올라온 셀러 공지… “여기서 사지 마세요”


최근 큐텐에서 판매되는 제빙기 등 중국 '직구(직접구매)' 상품의 상세 페이지에는 "대금 결제가 지연돼 발송이 불가하니 이메일로 구매 발송 연락을 달라"는 공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가 메일로 연락하면 지마켓·11번가 등 다른 오픈마켓 구매 링크를 소개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큐텐에서 물건을 팔고도 정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 중국 셀러들이 내놓은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렇게라도 플랫폼을 지키고 있는 중국 셀러들과 달리 상당수 국내외 셀러들은 이미 '탈(脫)큐텐' 상태다. 큐텐은 중국 텐센트의 쇼피(shopee), 알리바바 그룹의 라자다(Lazada)와 함께 싱가포르 이커머스 시장 빅3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싱가포르에도 티몬·위메프 사태가 알려지며 적지 않은 현지 셀러들이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해외 소비자에게 한국 제품을 파는 상당수 국내 셀러들도 큐텐에서 판매를 중단했다. 실제 최근 지마켓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지원을 받아 큐텐에서 활동해 온 이들 '해외 직판(직접판매)’ 셀러 100여 곳에 대해 "입점시키고 싶다"며 중진공 측에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셀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자 한국 사업을 총괄하는 큐텐테크놀로지는 희망자에 한해 오는 14일 일괄 권고사직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싱가포르 소재 큐텐 본사 또한 직원 40~50%를 감축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에선 "직원도, 셀러도 없는 개점휴업 상태"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큐텐의 향후 지급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미정산 문제가 없는 셀러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며 "티몬·위메프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큐텐도 몇 달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티몬·위메프 합병? 자본 조달은 ‘공란’


현재 구영배 대표가 꺼낸 해결책은 티몬·위메프 간 합병. 큐텐이 보유한 두 회사 지분 전량을 감자(減資·주식 소각)하고 셀러들이 보유한 상거래 채권(미정산 대금)을 주식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셀러 조합이 대주주(50%)가 돼 경영에 참여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KCCW(K-Commerce Center for World)'를 만들어 사업을 정상화, 내년 상장을 추진해 미정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구 대표는 합병 계획안에서 KCCW가 올해 말 '월 거래액 5,000억 원, 매달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고 한다.

문제는 합병 계획안에 정작 플랫폼 운영, 각종 프로모션 추진 등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본 유치 방안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티몬·위메프는 직원 월급 및 퇴직금도 정산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이 바닥난 상태다. 하지만 계획안에는 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구조조정 전문기업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나, 정부가 출자한 민간 구조조정 펀드 등으로부터 총 2,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겠다는 '선언적' 내용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중국에 있는 큐텐그룹 자금 8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구 대표가 사재(私財)인 큐텐 지분 38%를 합병 법인에 신탁하겠다고 했지만 가치가 급락한 상태라 의미는 없다는 평가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직원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플랫폼 영업이 가능하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티몬·위메프 피해 셀러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금 투자 언급도 없는 상황"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티몬·위메프 또한 창업자인 구 대표의 계획안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 이날 서울회생법원 회생2부에 별도 자구안을 각각 냈다. 신규 투자유치, 구조조정 등의 계획이 담긴 양사 자구안은 13일 정부·채권단이 참여하는 회생절차 협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티몬·위메프 양사도 아직 신규 투자자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