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를 슬로건으로 17일간 펼쳐졌던 2024 파리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 선수단은 대회 개막 첫날 10m 공기소총 혼성종목의 박하준-금지현이 은메달 따내며 '팀 코리아'의 메달 레이스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대회 기간 내내 예상을 뛰어넘는 메달 레이스를 펼치던 한국 선수단은 폐막일에도 '포스트 장미란' 박혜정이 역도 여자 81㎏ 이상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수확했다. 박혜정은 한국 신기록인 인상 131㎏과 용상 168㎏을 들어올려 합계 299㎏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 선수단이 파리 올림픽에서 거둬들인 메달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8위를 차지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8년 만에 '톱10' 진입이다. 총 메달 개수는 32개로, 역대 최다 메달을 건진 1988 서울 대회(33개)에 근접했다.
100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은 11일(현지시간)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펼쳐진 콘서트 같은 화려한 폐회식을 끝으로 지구촌 최대 축제를 마무리했다. 45개 종목 329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각국 선수들은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한국 선수단은 목표로 했던 금메달 5개 이상, 종합 순위 15위 이내 진입을 훨씬 뛰어넘어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펜싱의 오상욱(대전광역시청)을 시작으로 태권도 김유진(울산광역시청)까지 파리 하늘에 총 13차례 애국가를 울렸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대회에서 따낸 금메달 13개는 최다 금메달을 획득한 2008 베이징 대회, 2012 런던 대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대회 마지막 날까지 역도(박혜정)와 근대5종(성승민)이 각각 은메달, 동메달을 1개씩 추가해 최종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총 메달 수는 32개로 역대 최다인 33개를 건진 1988 서울 대회에 거의 근접했다. 1976 몬트리올 대회 이래 48년 만에 최소 규모로 출전한 144명의 태극전사가 연출한 기막힌 반전 드라마다.
사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스포츠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저출생 흐름 속에 저변이 약해지고, 단체 구기 종목은 몰락한 상황에서 직전 도쿄 대회(금메달 6개)보다 저조한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당초 대한체육회가 예상했던 금메달 5개는 양궁 3개, 펜싱 1개, 배드민턴 1개였다.
하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피땀 흘린 열정을 보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재근 선수촌장은 “개막 100일을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세계 대회 성적이나, 객관적인 전력을 볼 때 예상한 금메달은 5개였다”며 “그러나 옆에서 직접 지켜본 선수들의 사기가 50일 전, 30일 전 대회가 임박할수록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내부적으로는 금메달 7, 8개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희망이 솟았다.
소수 정예로 꾸려진 선수단은 열전에 돌입한 뒤 무섭게 돌변했다. 활, 총, 칼을 앞세워 거침없이 금메달을 수확했다. 양궁은 전 종목을 휩쓸어 5개의 금메달을 가져왔고, 사격은 아무도 예상 못 한 금메달을 3개나 명중시켰다. 펜싱은 남자 사브르가 2개의 금메달을 책임졌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양궁은 김우진(청주시청)과 임시현(한국체대)이 나란히 남녀 3관왕에 올랐다. 김우진은 이번에 금메달 3개를 보태 총 5개로 한국 선수 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여자 양궁 대표팀은 1988 서울 대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단체전 10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사격은 깜짝 ‘금빛 총성’을 수시로 울렸다. 오예진(IBK기업은행)이 여자 공기권총에서 사격 첫 금메달을 쐈고, 16세 고교생 명사수 반효진(대구체고)은 여자 공기소총에서 한국의 하계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을 장식했다. 또 여자 권총 세계 랭킹 2위 양지인(한국체대)은 기대대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파리의 유서 깊은 건물 그랑팔레는 약속의 땅이 됐다. 펜싱 오상욱이 이곳에서 2관왕에 올랐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 금맥을 뚫은 뒤 ‘뉴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 멤버들과 함께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정상에 섰다.
펜싱 종목이 끝난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린 태권도 역시 두 차례 ‘금빛 발차기’로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남자 58㎏급의 박태준(경희대)과 여자 57㎏급의 김유진(울산광역시체육회)이 금메달을 획득해 3년 전 ‘노골드’ 수모를 씻었다.
배드민턴 간판 안세영(삼성생명)은 여자 단식에서 ‘금빛 스매시’를 날렸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도 1996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다만 기초 종목인 육상과 수영에서 김우민(강원도청)의 남자 자유형 400m 동메달 딱 1개만 나온 건 아쉬운 대목이다.
파리의 영웅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12년 만에 현지에 차려진 사전 캠프와 한식을 꼽았다. 양지인은 “사전 캠프 덕분에 미리 컨디션을 조절하고 좋은 결과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도 동메달리스트 김하윤(안산시청)도 “한국인은 아무래도 밥심인데, 도시락을 보내줘 힘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파리 올림픽은 수많은 감동과 함께 논란거리도 적잖게 만든 대회로 기억될 전망이다. 한국 선수단은 개회식 때 황당한 경험을 했다. 파리의 상징 센강에서 수상 행진을 벌이며 입장할 당시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했다. 이에 발칵 뒤집힌 한국 선수단은 즉각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했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직접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북한 호명 사고 수습 후 쾌조의 금메달 레이스를 벌여 잔칫집 분위기가 됐을 땐 안세영이 “대표팀에 많이 실망했다”며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협회의 소홀한 선수 관리에 방점이 찍힌 목소리로,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나온 돌발 발언에 문화체육관광부, 체육회는 올림픽 종료 후 안세영과 협회 간 갈등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한국 선수단 본진은 한국시간으로 13일 오후 3시 55분 인천공항을 통해 개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