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클래식 스타 자랑 무대... 파리의 선택은 캉토로프, 한국은?

입력
2024.08.11 14:00
17면
[올림픽과 클래식 음악]
문화 축제로도 의미 깊은 올림픽
1932년 LA올림픽, 84대 피아노 등장
파리올림픽에선 캉토로프가 연주
프랑스인 최초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2024 프랑스 파리올림픽이 마무리됐다.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이지만 자기 나라 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도시와 문화에 대한 잔상은 오래 남는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올림픽에서 중요한 요소다. 올림픽의 몇몇 장면이 음악사에서 의미 있게 기록된 이유다.

2028년 하계올림픽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가 이어받는다. LA에서 열린 1932년과 1984년 올림픽은 음악적으로 큰 여운을 남겼다. 1932년 개막식은 스포츠와 문화가 결합된 대규모 행사로서 올림픽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84대의 피아노, 84명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등장해 당시 34세였던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다. 세계인에게 재즈를 강렬하게 인식시킨 이날 무대 외에도 거슈윈의 작품이 올림픽에서 수차례 연주됐다. 2010년 김연아에게 금메달을 안긴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에도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이 쓰였다.

1984년 LA올림픽에선 대규모 개막 공연이 본격화했다. 주제곡 '올림픽 팡파르'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중 하나다. '해리포터' '스타워즈' '쉰들러 리스트' '인디애나 존스' 등의 영화음악을 쓴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이 곡은 지금도 스포츠 행사를 포함한 어떤 자리에든 등장한다. 존 윌리엄스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앨범 '존 윌리엄스: 베를린 필하모닉'(2022)에도 첫 번째 트랙으로 수록돼 있다.

이어령(1934~2022) 전 문화부 장관이 기획한 1988년 서울올림픽의 주제곡도 빠질 수 없다. '손에 손잡고'는 오스카 트로피를 세 번 받은 전설적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가 쓴 것으로, 그룹 코리아나가 한글과 영어 버전으로 노래했다. 유럽과 미국 음악 차트에서 몇 주 동안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린 덕분에 서울올림픽을 알리고 기억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윤이상의 제자이자 진은숙의 스승인 작곡가 강석희(1934~2020)는 서울올림픽 성화 점화 배경음악을 작곡했다. 어두워진 잠실 올림픽경기장으로 성화가 들어오자 여성들이 빨래를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와 영상이 신비로운 전자음악 사운드와 오버랩되더니, 경기장 테두리가 순식간에 불꽃으로 채워졌다. 연출도 멋졌지만 지금 들어도 세련된 이 음악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을 빌린 '프로메테우스 오다'였다. 강석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위촉곡 '평창의 사계'도 썼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 등이 연주해 평창의 품격을 널리 알렸다.

파바로티의 마지막 무대...토리노 동계올림픽

1992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주최국의 세계적 성악가들이 화려함을 더했다.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1933~2018)는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뜨겁게 노래했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쇠약해진 건강 상태로 공연 취소를 거듭하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를 다시 무대로 불러들였다. 훗날 립싱크로 밝혀졌지만 개막식에서 파바로티가 부른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그의 마지막 공식 공연이 됐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소프라노 황수미와 조수미(패럴림픽)가 애국가를 열창했다.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 때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반젤리스가 작곡한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음악을 연주했고, 2022년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는 피아니스트 랑랑이 무대에 올랐다.

최고의 클래식 스타가 곧 그 나라의 자존심인 올림픽에서 프랑스는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프랑스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를 선택했다. 개막식에서 라벨의 ‘물의 희롱’을 연주한 캉토로프는 아직 20대이지만 레퍼토리 선택이나 소화력에서 독보적이라할 만큼 뛰어나다.

한국이 다시 올림픽을 치른다면 어떤 문화 축제를 만들게 될까. 파리올림픽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만큼이나 ‘높은 문화의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