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전기차의 배터리 잔량이 90%를 넘으면 공공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겠다는 과충전 방지 대책을 내놓자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서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다만 전문가들은 화재 예방을 위해 충전율 제한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9일 '공동주택 전기차 화재 예방대책'을 발표하고 다음 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또 '충전제한 인증서(가칭)' 제도를 도입해 충전 제한을 설정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전기차 충전율 제한 방법은 △전기차 제조사가 출고 때부터 충전 일부 구간을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는 내구성능·안전 마진 설정 △전기차 소유자의 목표 충전율 설정 등 2가지로 나뉜다.
서울시 발표 직후 온라인 전기차 커뮤니티에는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침에 따르면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준보다 항상 10%씩 충전율을 손해 봐야 하고, 이에 따라 주행할 수 있는 거리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승인하에 판매된 제품을 사서 세금도 다 내고 탔는데 왜 추가 부담을 져야 하느냐", "차주가 아니라 제조사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냐"고 항의했다.
공동주택 차원에서 모든 전기차의 충전율 수준을 관리하긴 힘들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제조사에서 내구성능·안전 마진을 일괄 상향 설정하기 전까진 차주가 목표 충전율을 언제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신문고에 관련 민원을 접수했다는 후기도 다수였다.
특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경우 성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매주 최소 한 번씩 100%까지 완충이 권고된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승용차 중 LFP를 탑재한 전기차로는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 Y, 기아 레이, 볼보 EX30, KGM의 토레스 EVX 등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충전율 제한은 필요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전기차 화재 중 과충전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이달 6일 충남 금산에서 화재가 난 기아 EV6도 과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당장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 가능하지만, 화재 발생 시 차주가 더 큰 부담을 져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전기차 판매 촉진을 위해서라도 화재 위험성은 해결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도 "(완충이 필요한) LFP 배터리 전기차가 문제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친환경성까지 고려하면 LFP 배터리 사용을 줄이고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사용을 확대하며 충전율을 제한하는 게 적절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