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김문수의 노조관

입력
2024.08.08 04:30
22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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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민노총이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세력화’된 민주노총이 MBC를 장악해 ‘좌편향’ 보도를 하게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MBC를 겨냥한 “흉기” 발언, “방송이 노동단체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으름장도 민주노총을 향한다. 장악의 근거는 없다. MBC 구성원 다수가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 소속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불법파업에는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을 언급하며 한 말이다.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을 가장 두려워한다. 민사소송을 오래 끌수록 굉장히 신경이 쓰이고 가정이 파탄 나게 된다”는 반인륜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노사 상생형 일자리로 탄생한 광주글로벌모터스 방문 후엔 무노조, 저임금을 감수한 노동자들을 칭찬하며 “감동적”이라고 했다.

극우적 역사관과 막말 등 이진숙 위원장과 김문수 후보자는 숱한 논란에 둘러싸여 있다. 그중 가장 참담한 건 노조에 대한 뒤틀린 인식이다.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노동단체로부터 독립’은 단결권을, ‘손배 폭탄’은 단체행동권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100만 명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불온한 집단으로 전제하며 차별,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것 역시 노동권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보수 진영은 오랫동안 민주노총에 낙인을 덧씌워왔다. ‘귀족 노조’ 프레임은 자동차·철강 분야 생산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이 주말, 밤낮도 없이 일한 잔업·특근의 산물임을 감췄고, 고임금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축시켰다. 파업 현장의 고성방가와 쓰레기, 부실 회계 등 일부의 무책임과 비리를 빌미로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매도했다. 민주노총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대신 ‘생떼’ ‘강성’ 프레임으로 손쉽게 노동·사회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왔다. 이 위원장, 김 후보자의 노조관은 여기서 한 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꼼짝하지 않는 월급, 크고 작은 부당함을 목도해 온 직장인들은 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노동자가 기댈 곳은 노조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자가 무노조로 치켜세웠던 광주글로벌모터스에도 올해 1월 노조가 생겼다. 노동자들의 연대 없이는 부당 처우를 바로잡을 방법 역시 없기 때문이다.

노조의 영향력은 노동자 개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1위 제빵기업이지만 기계 끼임사고 등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SPC그룹의 2017년 그룹 내 전체 산재는 4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106건, 2019년 167건으로 수십 배 증가했다. 2017년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생긴 후 은폐됐던 산재 사고가 투명하게 드러난 결과로 볼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사무처 직원들이 인사권자인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을 비판하는 것 역시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에 소속돼있기에 가능하다. 노조를 적대시하는 진짜 이유는 ‘귀족’이 아닌,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노조를 악마화하며 적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부처 수장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담당 분야 구성원에 대한 존중도 애정도 없는 이들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야말로 ‘장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