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철마다 선수들의 발전된 기량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이 바로 도핑 여부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도핑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 수영대표팀에 검사가 집중되면서 선수들이 "많으면 하루 7번씩 받아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며 불만을 토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소변 한 번 보는 게 뭐 그렇게 힘들어?'라고 생각할 독자들을 위해 기자가 지난달 26일 충남 부여에서 열린 제20회 백마강배 전국카누대회장을 찾아 선수들과 같은 방법으로 도핑 검사를 받아봤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국제 표준에 따라 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올림픽이 열린 파리 현지에서도 기자가 받은 방법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검사가 이뤄진다.
"김진주님, 도핑 검사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도핑 검사는 사전 통지 없이 불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표적이 된 선수에게 검사 대상자가 됐음을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자는 이날 오후 2시 13분, 피니시 라인에서 대기하던 검사관에게 통보를 받았다. 일단 통보가 이뤄지면, 선수는 시료 채취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검사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기가 야외에서 치러지는 카누 대회 특성상 이날은 이동형 검사차량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차량 내부엔 반 평짜리 화장실 2개와 1평 정도 크기의 대기실이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쾌적한 시설 덕분에 마음이 살짝 놓였고, 이때까지만 해도 첫 도핑 검사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소변 양, 농도 안 맞으면 맞을 때까지 무한반복
검사실에 도착한 검사관은 밀봉된 시료채취 용기 3개를 내밀었다. 다 같은 용기인데, 오염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3개 중 1개를 고르는 식으로 진행된다. 만에 하나 시료채취 용기나 시료키트가 각각 3개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선수 권리 보호와 절차 준수를 위해 검사가 중단된다.
당장 요의(尿意)가 없는 선수들을 위해 500mL 물도 2통 제공된다. 소변을 최소 90mL 이상 받으면서 일정 농도를 맞춰야 해 그 이상은 권장하지 않는다.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농도를 맞추지 못하거나, 한 번에 소변을 90mL 이상 배출하지 못할 경우 시료를 다시 채취해야 한다.
재검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혹감과 긴장감이 밀려왔다. 시료를 채취할 때는 시료가 해당 선수의 몸에서 배출되는 것을 반드시 검사관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선수는 검사관 앞에서 상의를 가슴까지 올리고, 하의를 무릎까지 내린 채 소변을 봐야 한다. 더구나 화장실 조명은 밝디 밝은 백색 형광등이었다. '반드시 한 번에 끝내리라' 다짐했다.
"선배 아직이세요?"... 기다리는 사람도, 대기하는 사람도 죽을 맛
통상 선수들은 경기 중에 땀을 많이 배출했거나 경기에 앞서 물을 거의 먹지 않아 검사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기에 기자도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자 이날 오전부터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대신 검사실에 입장한 뒤론 제공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1시간쯤 지났을까. 시계는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장 출발해도 오후 6시에 맞춰 서울에 도착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요의를 기다리며 검사서에 개인정보 등을 입력하고 검사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데에도 조금씩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함께 온 사진부 인턴기자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아직인지 물었다. 나 때문에 퇴근시간이 한참 늦어지는 것이 미안한 와중에도 요의가 느껴지지 않아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이럴 경우 통상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소변이 마렵게 유도하거나 텔레비전을 틀어 아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돕기도 한다.
검사관은, 실제 코치와 선수 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을 데리고 빨리 숙소나 훈련장으로 돌아가야 해 마음이 급한 코칭스태프와 장시간 요의를 느끼지 못해 초조해진 선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준비됐습니다"... 90mL 맞추랴, 허리 들랴 수치심 느낄 새도 없어
결국 2시간쯤 지난 뒤에야 시료 채취 준비를 마쳤다. 사실 1시간 30분쯤 됐을 때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혹시나 90mL를 한 번에 해내지 못할까 싶어 조금 참았다.
앞서 골라둔 시료채취 용기를 손에 쥐고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검사관의 지시에 따라 옷을 정비한 뒤 소변을 받는데, 어느 정도 찼는지 확인하려 상체를 숙일 때마다 어김없이 허리를 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소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걸 검사관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양변기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통에 표시된 90mL 선을 맞추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넘치면, 그게 더 수치스러울 것 같아 자꾸 고개가 숙여지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가까스로 90mL를 맞춘 뒤 자리로 돌아와 2개의 시료키트에 각각 60mL, 30mL씩 소변을 나눠 담고 나면 이물질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혹시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확인을 마치면 키트를 밀봉하고 최근 7일간 복용한 약물을 적은 뒤 검사서 사본을 받는 것으로 검사는 막을 내린다. 다만 이때 복용한 약물을 밝힌다 해서 면책이 되는 건 아니다.
10년간 보관되는 시료... 수년 뒤 도핑 적발되기도
채취된 시료는 10년간 보관된다. 계속 발전하는 검사 기법을 적용해 재조사를 실시하기 위해서다. 수년 전 도핑이 뒤늦게 적발돼 메달의 주인공이 바뀌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2 런던 대회 역도 최중량급에서 4위를 기록했던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4년 만에 동메달을 목에 건 게 대표적이다. 장 차관과 함께 런던 대회에 출전했던 역도 선수 전상균은 당시 3위를 했던 선수가 금지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최근 확인돼 무려 12년 만에 동메달을 되찾았다. 전상균은 9일 파리에서 열리는 역도 시상식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국제도핑검사기구(ITA)가 개막에 앞서 참가자의 75%를 대상으로 최소 3회 이상, 전체 3만2,600여 건의 도핑 검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개막 3일 전에 폴란드 높이뛰기 선수가 도핑으로 자격정지됐고, 이라크 유도 선수는 개막 당일 양성 반응을 보여 짐을 쌌다.
선수들, 약물은 물론 외부 음식도 '조심 또 조심'
파리 대회 폐막을 닷새가량 앞뒀지만 선수들은 약물뿐 아니라 현지 음식도 조심해야 한다. 10여 년 전 17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한 멕시코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클렌부테롤을 먹인 돼지고기를 먹고 난 뒤 경기 전 도핑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여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다. 클렌부테롤은 천식 치료에 쓰이는 기관지 확장제이지만, 벌크업 용도로도 사용돼 금지약물로 분류된다. 당시 축산 농가들도 돼지 살코기를 늘리기 위해 이를 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오염 버거' 사례도 유명하다. 중국 수영선수 탕무한과 허쥔이는 2022년 10월 중국 베이징의 한 레스토랑에서 감자 튀김과 콜라, 햄버거를 먹은 뒤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이 같은 중국 측 해명을 수용해 제재를 가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미국반도핑기구(USADA)가 강력 비판을 이어가면서 양국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현재 파리 대회에서 중국 수영선수들을 겨냥한 반복적인 도핑 검사가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관계자는 "외부 음식은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회를 마칠 때까지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