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숏폼의 시대에도 라디오는 흐른다

입력
2024.08.12 08:30
OTT·유튜브 등 뉴미디어 중심 시장 재편 속 레거시 미디어, 사장길로
다시 불거진 라디오 위기론,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이유는
"라디오, 공공성 지키며 만만해져야"...현직 PD가 전한 혜안은

라디오 시장은 정말 위기일까. OTT,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시장의 재편 흐름 속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미디어 매체)의 위기론이 여느 때보다 뜨거운 가운데, 또 한 번 라디오 시장의 존폐 위기론이 대두됐다. 과연 라디오는 급격한 미디어 시장의 변화 속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스마트폰의 보급과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 변화 속 최근 미디어 시장은 OTT,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가 장악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시청 점유율을 자랑하는 유튜브는 짧게는 2~3분, 길어도 10분 이내의 숏폼 콘텐츠를 폭발적으로 양산시키며 대중의 시청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정보를 보고, 듣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른바 래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전통 미디어들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찌감치 '시청률 무용론'이 제기된 TV는 물론 신문, 잡지 시장도 크게 축소됐다.

라디오 역시 시장의 변화 속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앞서 TV의 등장에 따라 청취율이 급감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던 라디오는 유튜브, OTT 스트리밍 시대에서 이전보다도 더욱 거센 위기를 맞았다. 방송 PD들조차 라디오가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니, 라디오 시장의 고민은 날로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도 라디오가 갖는 의미와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라디오가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길 바라는 이유다.

매일 같은 시간 2~3시간의 방송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음악을 전하는 라디오의 포맷은 분명 짧은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최근의 시청 패턴과는 상반되지만, 사연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DJ와 청취자의 즉각적인 소통과 이를 통한 정서적 교류는 뉴미디어는 물론 TV조차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라디오만의 강점이다. 실제로 오랜 시간 같은 시간을 지켜온 라디오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에게 단순한 '방송'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감동과 공감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라디오는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한 부분이자 추억이 되어 왔다.

뉴미디어 콘텐츠를 보기 위해선 플랫폼 사용료나 데이터 이용료 등을 지불해야 하지만, 라디오는 누구나 제약 없이 듣고 즐길 수 있다는 '접근성의 용이함'도 라디오의 장점이다. 라디오를 들으려면 수신기가 필요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차량 등이 널리 보급된 지금은 라디오를 듣고자 하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상태다. 몇 시간씩 볼 만한 콘텐츠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매 시간 다채로운 이야기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라디오의 매력이다.

올해 라디오 PD로서 20년 차를 맞은 SBS 러브FM '6시 저녁바람 김창완입니다'의 정한성 PD는 라디오의 위기론에 대해 "20년간 라디오를 하면서 늘 '위기'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라며 "제가 생각한 해답은 라디오가 계속 만만해지는 것이다. 라디오는 서민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이용료 없이 5,000원짜리 수신기 하나만 있으면 어떤 방송이나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라디오는 그 어떤 것보다 공공성에 충실해야 한다. 결국 청취자들에게 서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정 PD의 말처럼 청취자들에게 보다 서민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 외에도 라디오 시장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보고 듣는 콘텐츠에 익숙해진 청취자들을 위해 일찌감치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도입했으며, 대중에게 호감도가 높은 인물들을 꾸준히 DJ로 발탁하며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라디오의 장점은 살리되, 새로운 매력을 전할 수 있는 코너 발굴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다.

숏폼의 시대에도 라디오는 계속 흐를 수 있길 기대하면서, 최근 새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김창완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라디오는 누구나 와서 떠먹을 수 있는, 사시사철 어디서든 흐르는 약수 같은 게 아닐까요. 구정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맑은 물을 붓는 것처럼, 라디오도 그렇게 맑고 깨끗한 방송을 흘려보내는 약수 같은 존재가 됐으면 합니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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