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입 여론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의 통신이용자정보를 대거 조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언론계와 야당은 “언론과 정치 사찰”이라고 강력 규탄하지만, 검찰은 “적법한 조회”라고 일축한다. 3년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 의원 대상으로 대규모 통신 조회를 한 것이 드러나 파장이 일었던 것과 판박이다. 공수만 바뀌었을 뿐이다.
검찰의 대규모 통신 조회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산저축은행 수사 관련 허위사실을 언론에 보도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사건 주요 피의자와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은 상당수 언론인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보좌진 등이 조회 사실을 무더기로 통보받았다.
조회 사실 통보는 올해부터 시행된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른 절차다. 헌법재판소가 2022년 7월 사후 통보가 없는 통신자료 조회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개정된 법은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단 증거인멸 등의 우려 시에는 최장 6개월 통보를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1월 초 자료 조회가 이뤄졌고 지난 2일 일괄 통보가 됐으니 유예기한을 꽉 채운 것이다.
가입자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등을 담은 통신이용자정보는 수사기관이 법원 영장 없이 통신사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 취재활동을 위축시키고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검찰이 조회 후 7개월이 지나서야 통보한 것을 두고도 4월 총선을 고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2021년 12월 공수처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소속 의원 89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드러나자 윤 후보는 “공수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까지 했다. 반면 민주당은 “명백한 합법”이라고 감쌌다. 양쪽 다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논란을 되풀이 않으려면 수사기관의 과도한 재량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법을 다시 손봐야 한다. 가뜩이나 이번 수사는 윤 대통령 관련 의혹 보도를 고의적인 허위보도로 몰아가 언론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통신자료 조회도 법원 영장을 통해 사법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게 옳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관련 권고를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이현령비현령으로 운영되는 통보 유예도 좀 더 엄격한 조건을 붙여야 정치적 악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