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53년 만에 '실미도 사건'을 사과한다. 훈련 중이던 북파공작원들이 가혹한 대우를 항의하려 서울로 진입하던 중 군경과 대치 후 교전을 벌인 사건이다. 국방부는 사건 희생자 유족 측과 사과 방식을 두고 소통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방부 간부가 신 장관 사과문을 대독하는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국방부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유족 동의에 따라 9~10월 예정된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신 장관의 사과가 전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토제는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땅을 처음 팔 때 지내는 제사를 뜻한다.
국방부는 앞서 실미도 희생자 유족 측에 9~10월 중 예정된 암매장 유해 발굴 개토제 행사에서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이 국방장관 명의의 사과문을 대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실미도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지만, 이행되진 않았다.
국방부의 사과 결정은 올해 초 "신 장관의 결단"에 따라 구체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장관이 사과문 발표 방침을 굳혔으며, 이를 대독하게 한다는 방안에 유족 측도 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다만 시점과 장소가 문제였는데, 국방부는 "몇 달간 여러 교감을 나눠왔고, 유족 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미도 사건은 인천 중구 무의동(당시 경기 부천군 용유면)의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제209 파견대)에서 3년 4개월 동안 훈련을 받아오던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 23일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탈출, 청와대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서울로 진입하던 중 군경과 교전을 벌였고, 결국 경찰 2명, 민간인 6명, 공작원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병력 30여 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미수에 그친 후 북한 침투작전을 목표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와 공군이 창설한 부대로 밝혀졌다.
당시 생존한 공작원 4명은 이후 군법회의를 거쳐 이듬해 경기도 벽제 인근에서 사형당했다. 군은 이들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암매장했다. 교전 중 사망한 20명 유해는 2005년 발굴했지만, 국방부는 지난 5월에야 이들 4명에 대한 발굴착수 방침을 발표했다. 진실화해위가 벽제리 묘지 5-2구역을 유해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 권고를 한 데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