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일수교 60년을 맞는다. 이룬 성과가 많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이에 2000년대에 추진했던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재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래야 양국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면서도 과거사 문제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신각수 전 주일대사, 스기야마 신스케 와세다대 특명교수(전 외무성 사무차관), 진창수 주오사카 총영사에게 양국의 현안을 물었다. 이들 3명의 전·현직 고위급 외교관은 한일관계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한일 갈등의 핵심은 역사 문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다투지 않은 채 문제를 봉합해버렸다. 이후 60년간 한일관계의 핵심 현안이 됐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신각수(신)="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이 일단 솔직하게 툭 터놓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역사 공동위원회를 부활시켜 거기에 맡기고,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지난 60여 년간 한일이 쌓은 성과와 노력을 무너뜨리지 말자고 일종의 '패키지 딜'을 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한다."
스기야마(스)="한국의 시선에서 일본은 역사의 가해자이고, 일본 또한 이 문제를 부정할 수 없지만 1965년 협정에서부터 지난 10~20년간 한일 사이 여러 차례 외교적 합의가 있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 합의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 자체가 한일관계의 불안을 뜻한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리더십으로 한일관계가 좋아졌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리더십을 발휘해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 큰 흐름을 유지하고, 소소할지 몰라도 조금씩 상호 의견교환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굴곡진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방법론인데.
진창수(진)="피부로 느끼는 한일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한일 간 왕래가 활발한 점을 고려해 입국 간소화 등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시적으로 비자면제가 이뤄졌는데, 당시 한일 간 왕래가 비약적으로 많아졌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해도도 높아졌고, 한국도 그랬다."
스="day-to-day, 상시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한일 당국 간 추진할 수 있는 소통방식은 전략대화나 외교안보대화가 있다. 채널은 많다. 가능한 대화와 협력을 한 걸음 한 걸음 지속해 나가고 심화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신="인공지능(AI) 및 첨단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특히, AI와 데이터뿐 아니라 녹색에너지 전환에 있어 한일은 산업적으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구조다. 공급망 차원에서 한일 간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협력구조를 만들 수 있다."
-안정적이고 제도화된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
신="한일 사이 신뢰가 깊지 못해 추진하기 어려운 안보협력 사업은 한미일 3자 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일 간 신뢰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신뢰회복은 국민이 한미일·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선 정부가 국민에게 한일협력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하는 차원에서는 안보프레임워크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 3국 협력 사무국을 설치해 제도화 기능을 강화하는 조치가 있다. 특히, 한미일 협력 사무국은 한일관계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하면 동북아 정세와 한미일 안보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한국과 일본에는 어떨까.
스="솔직히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이건 한국과 일본 모두 곤란한 상황이 된다. 이런 점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미국에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
진="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 친구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안전핀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한국을 압박하는 구조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를 억제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하면서 동아시아 정세 불안이 심각하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스="중국에 대한 한미일 3국의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다만, 중국이 국제법을 따르고 좀 더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3국의 이해관계는 같다. 그런 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활용해야 한다."
신="한일관계가 좋을 때 중국의 강압적 외교정책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지고, 중국 또한 보다 유화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는 요인이 생긴다. 또한 우발적 사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핫라인뿐 아니라 한중일 3국 간 상시적 안보대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