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인가. 35년간의 식민압제를 이겨내고,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어난 기적의 나라이다. 지난 세월 여러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보장되는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그 놀라운 발전의 중심에는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보수 지도자들이 있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를,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용감하게 추진했다.
나라를 지키고 성장시켰던 보수의 용기와 혜안은 어디로 갔나. 대한민국은 안으로는 저출산 고령화, 밖으로는 국제사회의 신대결구도라는 엄청난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지방경제와 민생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가족 가치가 무너지고 심각한 수준으로 사회 해체가 일어나는 것도 큰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혁신적 보수'의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보수가 다시 한번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선택을 내렸었다. 2년여 전 대선을 통해 민주당 정부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심판하고 보수에 다시 일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목도했듯 보수 정부와 정당은 2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엑스포 유치, 잼버리 등 연이은 정책 실패에 이어, 의대 증원 등 설익은 정책 드라이브로 논란을 자초했다. 새롭게 등장한 국내외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선거에 연거푸 패배하면서도 국민의 소리에 답하지 않았다. 최근 전당 대회에서도 국민께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없고 지긋지긋한 계파싸움만 두드러졌다.
시간을 낭비한 보수의 자업자득일 수 있지만 지금 우리 국회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러다가 의회 민주주의가 궤멸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몹시 심란하다. 형사적 처벌을 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야당 지도자도 목불인견이지만, 그를 호위하고자 오만과 독선으로 헌법 정신마저 무시하는 의원들의 횡포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최근 일부 의원들의 언행을 보면 그들의 인성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상스러운 말과 행동을 자행하는 의원일수록 팬덤이 더 형성되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기이한 현실이다.
앞으로 2년 반 이후 다시 대선이 돌아온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보수 진영이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급할수록 기본을 지켜야 한다. 보수 정당의 재건은 당명, 당색 등 단순한 이미지 변신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재탄생에 가깝도록 당내 의사결정 구조와 정책방향의 근원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첫째, 외연을 넓혀야 한다. 기존의 보수적 가치에만 갇혀 있지 말고, 사회 각 분야의 이슈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특히 MZ세대와 중도층을 겨냥한 파격적인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다양한 인재를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다.
두 번째는 당내 의사결정과정에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당원과 국민이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정책 제안과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거기서 형성된 집단지성이 의사결정에 실제로 반영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유능한 정책정당으로의 자기혁신이다. 각 당은 소중한 세금으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정당의 정책개발 기능을 정상화해 생산적인 입법 활동의 본산으로 확실히 개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싫든 좋든 용산의 시간은 빠르게 저물고 있다. 대통령실은 정책 현안과 국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꺼내놓은 개혁 과제들을 추려 잘 마무리 짓고, 방산과 원전수출 등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재명식 현금살포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당대표는 자주 만나 소통해야 한다.
이전의 보수처럼 다시 혁신보수의 DNA를 살리는 것만이 유일한 생로다. 즉 보수당으로서의 기본 가치를 지키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유연하고 혁신적인 새로운 보수주의의 길, 그 위에 해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