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6월 바이든-트럼프 간 TV 토론 이후 트럼프의 대세론으로 굳어지는 듯했던 판세가 바이든의 후보직 사퇴와 해리스의 등판으로 요동치고 있다. 특히 바이든에 실망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결집하면서 후원금과 자원봉사자가 쇄도하고 있다. 주요 경합주를 비롯해 전체적인 판세는 여전히 트럼프에 유리한 형국이지만 이 흐름이 지속될지, 아니면 해리스의 대역전극이 펼쳐질지, 이제 3개월 남은 미 대선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본다.
우선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트럼피즘은 더욱 위세를 떨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부정선거로 졌다’고 믿는 트럼프는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면서 2기를 준비해 왔다. 게다가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부담이 없어 자신의 정책을 마음껏 추진할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적인’ J. D. 밴스가 부통령이 되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란 슬로건은 대내외정책의 강력한 이념적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러스트 벨트의 애환을 담은 '힐빌리의 노래'로 유명한 흙수저 출신의 밴스는 저학력·저소득 백인 블루칼라를 기반으로 한 트럼피즘에 더 부합한 인물이다.
반대로 후발주자인 해리스가 대역전극을 펼치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대처와 메르켈이라는 여성 지도자를 배출했던 영국·독일과 달리, 미국에선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에 300만 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패배했다. 더구나 해리스는 부모가 아프리카와 인도 출신인 첫 소수계 여성 대통령이 된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여성 대선 후보 클린턴이 닦은 정치적 기반을 발판으로 인종과 성의 강력한 이중 유리천장을 깬다면 그 자체로 역사적 사건이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인데 이대로라면 공화당이 상원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의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던 민주당 지도부가 ‘대선보다는 상·하원 선거를 염두에 두었다’는 뒷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의회의 힘이 막강한 만큼 새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의회를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여당이 상·하원 모두 장악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해리스와 트럼프의 공약과 지지층은 선명한 대척점에 서 있어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질 것이다. 성과 인종, 연령 등 배경 차이뿐 아니라 낙태, 이민, 총기 규제 등 정체성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대외정책도 기후변화, 동맹의 가치, 보호주의 대 다자주의적 협력 등을 놓고 대립할 것이다. 양쪽이 총결집했던 지난 대선보다 더 높은 투표율을 보일 것인지, 또 투표수에서 앞서고 선거인단수에서 지는 결과가 반복될지도 관심사다. 특히 인구 분포상 상대적으로 노인과 백인 블루칼라가 많은 핵심 경합지역에서 해리스가 고전할 것으로 보여 2016년 대선 결과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누가 승리하든 세대교체는 이루어질 것이다. 60세의 비교적 젊은 해리스 대통령은 물론이고, 트럼프가 승리해도 밴스라는 40세의 젊은 부통령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다만 세대교체가 정치적 양극화의 완화나 사회적 통합의 제고 등 새로운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흑인·아시아계 여성 대통령 또는 리틀 트럼프인 밴스 부통령에 대한 반대 진영의 반감이 커지며 정치적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난 두 번의 대선보다 더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며, 누가 집권하든 사회정치적 분열과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체성의 정치의 그늘을 극복하는 것이 새 정부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