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실패에 금메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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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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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일스는 체조의 ‘GOAT(The Greatest of All Time)’다. 그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딴 메달은 무려 37개. 여기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선 4일까지 금메달 3개를 추가했다. 역대 최고(GOAT)인 이유다.

그런 그에게 한때 올림픽은 열 수 없는 옷장이었다. 그는 방 한쪽 벽장에 유니폼, 국가대표 배지 같은 물건들을 넣어두고 ‘금지된 올림픽 옷장’이라고 불렀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뛰어올라’에서 그걸 열어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앉아 울고 또 울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신께 물으며.”

3년 전 도쿄올림픽이 시작이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목에 건 그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바일스는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단체전 결선 도중 기권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개인종합도 포기했다. “그만하고 싶다. 내 삶엔 체조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트위스티스’를 앓고 있었다. 공중 동작을 할 때 방향 감각을 잃는 현상이다. 바일스는 말했다. “일하면서 생긴 일을 모두 마음속에 쑤셔 넣었으니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기대도 압박이 됐다. 그는 “내 어깨에 세계의 무게를 짊어진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미국에선 “포기자(quitter)”라는 비난이 나왔다. 그럴까. 그는 경기를 포기했을지언정 인생을 포기하진 않았다. 청문회에도 섰다. 자신을 비롯한 여성 체조 선수들이 국가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게 당한 성학대를 증언하고 이를 묵인한 국가 체제를 비판했다.

자신을 지킨 바일스는 올해 다시 올림픽에 섰다. 오른쪽 쇄골 아래엔 ‘And still I rise’라는 문구를 새겼다. ‘그래도 나는 일어난다’는 짧은 문장엔 바일스가 보낸 투쟁의 3년이 담겨 있다. 그 시간은 그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올림픽이 1년 미뤄져) 나이가 좀 더 많아졌다. 그래서 빨리 지친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27세가 된 바일스는 이번 파리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엔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경험도 더 쌓였다.” 3년 만에 바뀐 삶의 태도다. 그런 바일스에게 메달이 뭐 그리 중요할까. 그는 이미 인생 최고의 메달리스트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를 본다. 수영의 기대주 황선우 선수는 주종목인 자유형 200m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황 선수는 “이런 고비를 겪은 적이 없다. 그날 밥이 안 들어갈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사격 국가대표 이원호 선수는 참가한 두 종목(공기권총 10m 혼성·개인) 모두 4위에 그쳤다. 눈앞에서 메달을 걸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올림픽에 서기까지의 노력을 말이다. 황 선수를 비롯해 우리 선수들은 수영 단체전에서 사상 처음 결승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그간 흘린 땀의 열매다. 이 선수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7년 전 갑자기 오른팔이 떨리기 시작해서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포기하는 대신 그는 6년간 왼팔로 훈련했다. 그에게 왼손 사격은 “사실 지금도 그만두고 싶은" 험난한 도전이다.

그 시간에 감히 메달로 값어치를 매길 수는 없다. 그러니 선수들이 부디 실망도, 절망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실패에 금메달을 걸어줄 때다.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