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로 가계부채로 시름하지 않은 정부는 드물다. 규제책은 날로 촘촘해졌다. 가장 먼저 도입된 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도입된 LTV는 집값 대비 대출 최대한도를 정해놓는 규제다. LTV가 70%라면 10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7억 원까지 빌릴 수 있다. 갚을 능력은 따지지 않는 게 맹점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도입한 게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다.
□ DTI는 이자 상환액을 채무자 연소득으로 나눈다. DTI가 60%이고 연소득이 5,000만 원이면 주담대 원리금과 기타 부채 이자의 합이 연간 3,0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그러니 LTV와 DTI를 동시에 적용하면 담보가치와 상환능력을 모두 고려해 대출한도를 규제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 당시 국민경제비서관은 “DTI를 좀 더 일찍 도입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2018년 등장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DTI의 확장판이다. 주담대뿐 아니라 신용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따진다. 그만큼 더 두터운 규제다.
□ 올해 2월부터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간 ‘스트레스 DSR’가 시행됐다. 향후 금리 상승까지 고려해 대출한도를 정한다. 은행권 주담대에 한해 시행된 1단계에 이어 7월부터는 2단계로 은행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까지 적용할 예정이었다. ‘스트레스 금리’, 그러니까 향후 금리 리스크도 더 높게 책정한다. 당연히 대출한도는 많이 줄어든다. 6월에만도 5대 은행 가계부채가 5조 원 넘게 불었으니 필요한 조치였다. 그런데 불과 닷새 앞두고 돌연 시행을 9월로 2개월 늦췄다.
□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당국자들은 ‘자영업자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지원 때문’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한다. 영 설득력이 없다. 자영업자들이 두 달 동안 대출을 늘려 연착륙을 하라는 건지, PF 불안감 해소와 가계대출 규제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을 못한다. 7월 가계부채는 전달보다 더 폭증했고, 집값은 천정부지다. 지금이라도 2단계를 당겨서 시행할 법도 하지만 꿈적 않는다. 이 미스터리한 정책을 누가, 왜 밀어붙이는 건지 궁금하다. 훗날 감사원에서라도 꼭 따져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