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정부가 ‘자율 규제’로 뭉개다가 이 기회를 날린 것으로 확인됐다. 티메프 사태로 인한 피해금액만 1조 원을 넘고 인터파크쇼핑, AK몰 등 다른 플랫폼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뒷북 규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31일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줘야 할 결제대금을 돌려막기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갖고 있도록 하는 장치를 이중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논의되고 있는 대책은 크게 세 방향이다. ①정산 주기 단축 ②결제대금 관리 ③환불 등 거래 절차에서 플랫폼 책임 강화다. 모두 처음 나온 대책이 아니다. 2022년 8월 공정위 주도로 출범한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나 국정감사 등에서 언급된 적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자율 규제' 기조에 따라 정부는 이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대화에 맡겨왔다. 자율기구 논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계약서에 수수료·광고비 적용 방식, 대금 정산 주기·절차 등을 투명하게 담기로 한 게 결론이었다"며 "정부가 권고하거나 강제하는 내용은 일절 없어, 업체마다 협의 내용도 제각각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플랫폼의 늦은 정산 주기 문제를 규제할 계획이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판매대금을 40일 이내에 납품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달리, 티몬과 위메프 등 오픈마켓을 연결하는 플랫폼업체는 그간 규제를 받지 않았다.
티몬은 거래가 발생한 달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40일 뒤에, 위메프는 익익월 7일에 거래대금을 정산해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플랫폼이 결제대금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이를 다른 곳에 사용하고 싶어지는 유인이 사라지는 반면 대금 지급이 늦어질수록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등 입점업체의 부담은 커진다"고 말했다.
결제대금 관리를 위해 에스크로(Escrow)제도 강화도 고려 중이다. 에스크로는 거래대금을 거래가 완료될 때까지 은행 등 제3의 기관에 예치해 안전을 담보하는 방식이다. 배송이 정상적으로 완료된 것이 확인되면 판매자 계좌로 대금이 입금되기 때문에 플랫폼업체가 이를 유용할 수 없다.
2000년대 후반 시작된 1세대 오픈마켓인 G마켓과 11번가, 옥션 등은 모든 거래에 대해 에스크로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후 생겨난 티몬·위메프의 경우 수수료 부담 등의 이유로 정산대금을 자체 관리해왔다. 정산대금이 다른 기업 매매대금으로 흘러가거나 프로모션 등 마케팅 비용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전자상거래법(전상법)도 손본다. 전상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판매자는 이를 3영업일 내에 돌려주거나 지연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거래 구조상 환불 책임은 입점업체가 져야 한다. 티몬과 위메프는 거래를 중개한 플랫폼이라 전상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플랫폼 회사는 중개수수료로 돈만 벌고 사고가 터지면 나 몰라라 하는 셈인데, 거래를 중개한 사업자의 고의·과실로 손해 발생 시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등 책임 강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