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중국)에 의한 지식재산의 도난은 매년 수백만 개 일자리와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했다. 우리 부(富)가 너무 오랫동안 유출됐는데도 워싱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눈감아서는 안 된다."
2017년 8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그 뒤에는 트럼프의 최측근 경제 책사이자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있었다. 라이트하이저가 지난해 미국에서 낸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원제 'No trade is free')'이 번역돼 나왔다. 1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벌인 무역분쟁 막후의 상세한 기록이다. 트럼프는 "트럼프 2기의 무역 정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라"고 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라이트하이저가 재무장관이 될 거란 전망이 많다. 미국 재무장관은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자리다.
뼛속까지 자유무역 회의론자인 라이트하이저는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주(州)의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 벨트)에서 나고 자랐다. 트럼프의 러닝 메이트(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힐빌리의 노래'의 배경인 곳이다. 활기를 띠던 철강산업이 중국산 철강에 밀려 기우는 과정을 지켜본 라이트하이저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위시한 자유무역이 미국 제조업을 망쳤다고 믿는다.
특히 "4,0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대중국 무역적자는 시장의 힘이 아니라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의 결과"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라이트하우저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관계 재조정 조치'를 주도했다. 책에는 2017~2020년 중국 베이징과 미국 워싱턴을 오가며 이뤄진 미중의 지난한 협상 과정이 담겼다.
라이트하이저는 "301조 조치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며 "중국과의 정상 무역 관계(최혜국대우·MFN)를 폐기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가장 시급한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트럼프의 미국 최우선주의를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는 만큼 향후 올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 때문에 책은 대미 교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한국에도 중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라이트하이저는 인도, 베트남과 함께 한국을 '그밖의 주요 협상국들'로 언급했다. 그는 "트럼프는 우리가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쓰고, 한국이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가져간다는 사실에 화를 내곤 했다"고 전했다.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진두지휘한 그는 "협상을 더 미뤘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양보는 피할 수 없었다. 우선주의 무역 정책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각종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