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책 발표 날, 기습 기업 회생…큐텐 구영배, 국회 등판 앞두고 각본 짜기 시도했나

입력
2024.07.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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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
'최선 다하나 해결은 역부족' 메시지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29일 계열사인 티몬·위메프 사태 해결책을 내놓자마자 두 회사에 대한 기업 회생(법정관리)을 기습 신청한 건 30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출석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들이 나왔다. 전국에 생중계되고 국회의원의 각종 질문·질타를 받기 전 회사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비자, 판매자(셀러) 피해 구제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부각하려는 '잘 짜인 각본'인 셈이다.

구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30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서 열리는 '티몬·위메프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다고 여당 간사(강민국 의원) 측에 밝혔다. 다만 구 대표 등이 실제 현장에 나올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이번 현안질의가 급하게 잡혀 증인 출석 요구를 위한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터라 출석을 강제할 수 없어서다.

구 대표와 티몬·위메프는 정무위 출석을 하루 앞둔 전날, 서로 상반돼 보이는 자구책 발표, 기업 회생 신청을 여덟 시간 간격으로 했다. 우선 구 대표는 티몬·위메프 사태 해결을 위해 M&A(인수·합병), 큐텐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소비자 환불 대란, 판매자(셀러) 정산금 지연 등 티몬·위메프 사태가 터진 이후 구 대표의 입장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티몬·위메프가 법원에 신청한 기업 회생은 구 대표가 자구책을 발표하면서 "피해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발언을 뒤집는 모양새다. 법원이 기업 회생을 받아들이면 셀러가 제때 수령하지 못한 정산금을 그대로 돌려받는 건 어려워서다.

티몬·위메프가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일단 미정산금은 묶이게 돼 셀러는 이를 받지 못한다. 또 기업 회생 과정에서 티몬·위메프가 채무를 탕감받게 되면 셀러에게 줘야 할 미정산금 규모 자체도 작아진다.

구 대표가 자구책 발표, 기업 회생 신청을 동시에 진행한 건 국회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해결까진 역부족’이라는 메시지를 내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자구책만 제시하면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고 기업 회생만 진행하면 피해자 구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력하고 있다'는 구 대표와 티몬·위메프의 항변이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피해자 사이에서 기업 회생 신청은 티몬·위메프의 도산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자구책은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티몬·위메프가 수습책을 내놓은 날 기업 회생도 신청한 건 비판 여론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피해자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