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외워온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다음 올림픽 때 꼭 부를게요"

입력
2024.07.30 05:03
유도 여자 57㎏ 은메달리스트
한국인 父·일본인 母 사이에 태어나 일본서 성장
할머니 유언 따라 태극마크 단 독립운동가 5대손
돌아가신 할머니에 "나 정말 열심히 했다" 메시지

“애국가 가사를 외워왔는데, 다음 올림픽에서 꼭 부를 게요.”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경북체육회)가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웃었다. 허미미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유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에 석패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한국 유도 대표팀의 첫 메달이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48㎏급 정보경 이후 8년 만에 나온 여자 유도 은메달이다.

경기 후 허미미는 “너무 아쉽고 기분이 마냥 좋지 않다”면서도 “비록 어렸을 때부터 목표로 세운 금메달은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행복하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미미가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고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3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그는 2021년 “꼭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택했다. 1년도 되지 않아 국가대표가 된 허미미는 결국 할머니의 바람대로 올림픽에 출전했고, 귀중한 은메달까지 수확했다.

허미미는 “할머니께서 어려서부터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할머니께 금메달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렇게 올림픽 메달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엔 “정말 열심히 유도했다. 계속 더 노력하는 유도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기도 하다. 파리로 출국하기 전 대한유도회에 낸 올림픽 출사표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결국 목표를 달성했지만, 미리 외워온 애국가를 부르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는 “파리에서는 못 했지만,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금메달을 따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부르겠다”며 “4년 후에는 나이도 먹고 체력도 좋아질 테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결승전 석연치 않은 판정에 대해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허미미와 데구치는 정규 시간(4분) 내에 승부를 보지 못하고 연장전(골든 스코어)에 돌입했는데, 허미미는 메치기를 시도하다 위장공격을 했다는 이유로 세 번째 지도를 받고 반칙패했다.

허미미는 “그 공격이 위장공격인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다만 경기의 일부인 만큼 어쩔 수 없다. 다음부터는 그런 부분도 신경 쓰고 경기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미정 여자 유도대표팀 감독은 “프랑스 심판이 허미미의 기술 동작이 작고 주저앉아서 위장 기술로 판단한 것 같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미미는 위장 공격을 하지 않았다”며 판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허미미에게는 일본 취재진의 관심도 집중됐다. 그는 한국 국적을 택한 이유와 소감 등을 묻는 질문에 “(그 덕분에)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많은 선수와 같이 겨룰 수 있었다.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