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유도서 값진 은메달... 파리 하늘에 태극기 휘날렸다

입력
2024.07.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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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57㎏급 결승서 세계 1위 데구치에 석패
할머니 유언 따라 한국 국적 택한 재일교포
험난한 여정 이겨내고 '태극기 게양' 목표 달성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경북체육회)가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유도에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했다.

세계랭킹 3위 허미미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유도 여자 57㎏급 결승전에서 세계 1위 크리스티나 데구치(캐나다)와 연장승부(골든 스코어)를 펼친 끝에 반칙패했다. 비록 금메달을 놓치긴 했지만, 허미미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48㎏급 정보경 이후 8년 만에 여자 대표팀에 은메달을 선물했다. 이번 대회 한국 유도에서 나온 첫 메달이기도 했다.

허미미는 첫 출전인 이번 올림픽에서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가며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32강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지만, 16강 넬슨 레비(이스라엘·10위)와의 경기에서 지도 두 개를 주고받으며 고전했다. 둘은 4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 승부(골든 스코어)에 돌입했고, 레비가 세 번째 지도를 받으면서 허미미가 가까스로 반칙승을 거뒀다.

어렵게 오른 8강에는 허미미의 ‘천적’ 엥흐릴렌 라그바토구(몽골·13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그바토구는 허미미보다 세계랭킹은 낮지만 이번 대회 전까지 치른 3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가져갔다. 그러나 허미미는 주눅들지 않았다. 그는 경기 내내 집요하게 상대를 공략했고, 경기종료 약 15초를 남겨두고 라그바토구의 안다리를 걸어 쓰러트리며 절반을 따냈다.

하파엘라 실바(브라질·4위)와의 준결승전에서도 골든 스코어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다. 이날 두 번째 연장전을 치르게 된 허미미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초인같은 힘으로 실바를 뒤집는 데 성공했고, 이후 위 고쳐 누르기 공격으로 절반승을 거뒀다.

대망의 결승 상대는 2019년과 2023년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세계 최강 데구치였다. 허미미는 올해 5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데구치에 승리를 거뒀지만, 올림픽의 벽은 세계선수권보다 높았다. 팽팽한 힘겨루기를 펼친 둘은 정규 시간(4분) 내 승부를 보지 못했고, 경기는 또 한 번 골든 스코어로 접어들었다. 이미 두 번의 지도를 받았던 허미미는 골든 스코어에서 지도 하나를 추가하고 반칙패했다.

허미미는 남다른 성장배경으로 대회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 선생의 5대손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그는 2021년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택했고, 1년도 되지 않아 한국 유도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할머니의 소원대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그는 올해 5월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29년 만에 한국 여자 유도계에 금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허미미는 파리 출국 전 대한유도회에 낸 올림픽 출사표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프랑스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리러 갑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결국 귀중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