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특례로 신사업을 임시 허용해도 현실적으로 규제를 개선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답답할 뿐입니다." (조산구 위홈 대표)
내외국인 공유숙박 플랫폼 '위홈'은 현행법상 불법인 내국인 대상 도시 민박 사업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신청, 승인받아 2020년 7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서울 지하철역 반경 1㎞ 이내로 제한됐지만,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부산 전역으로 확장했다. 4년 실증특례 기간은 지난달 15일 종료됐지만 여전히 규제가 개선되지 않아 사업 영위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현재는 두 달 전 신청한 임시허가 전환도 확답받지 못한 채 '결정 전까진 사업이 가능하다'는 부처를 믿고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관련 규제가 개선되지 않고 임시허가 승인이 나지 않으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어 플랫폼을 이용하는 호스트(숙소 운영자)들도 불안하다. 조 대표는 "불법이라고 해 애써 특례를 받았는데, 정작 해외 기업 에어비앤비는 제재받지 않고 운영해온 모순적 상황"이라며 "언제까지 특례가 유지될지, 제도가 확실히 바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한탄했다.
한국 규제 혁신의 현주소다.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서비스를 시험·검증해 합리적으로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2019년 영국 제도를 본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지만, 5년여간 이 제도로 규제가 바뀐 비율은 25%에도 못 미쳤다.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가 '헛바퀴를 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0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2019~2024년 규제 샌드박스 승인 및 규제 개선 건수'를 보면, 올해 상반기까지 기업들이 8개 부처 등에 신청한 과제 1,409건 중 1,266건이 승인됐지만 관련 규제 개선은 24.3%에 불과한 308건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실증특례 1,092건 중 222건 △임시허가 114건 중 30건 △적극해석 60건 중 56건이었다.
적극해석은 별도 법령 정비 없이 유연한 해석·정책 권고를 통해 애로 사항을 해소하는 제도로 대부분 즉각 개선됐다. 그러나 법령 개정 필요성을 전제로 하는 임시허가도 개선비율은 26.3% 수준이다. 실증특례는 아직 검증 진행 중인 사안이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해도 개선비율이 20.3%로 가장 낮았다. 법률 개정 없이 부처 소관으로 개선 가능한 사안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기업에 정부의 '규제 혁신' 구호가 와닿지 않는 이유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규제 샌드박스 만족도 조사'에서 기업 73.2%는 "승인 후 실증특례 진행에도 소관 부처 규제법령 개정이 더뎌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선 규제 개혁 체감도 저해 원인 1, 2순위로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 '핵심 규제 개선 미흡'이 꼽혔을 정도다. '타다 금지법' 사례처럼 신·구 산업 갈등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부처의 소극 행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혁신성이 중요한 신산업 특성상 사업화 시점이 관건이나 규제 샌드박스 신청부터 결정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무조정실에서 받은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각 2020년, 2021년 실증특례를 신청한 비대면 복약 상담·안전 배달, 택시배송 서비스 등도 심사 중이다.
지난해 행정규제기본법을 개정해 기본 90일, 최장 120일 이내 규제특례위원회에 상정케 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법 개정 후 신청된 과제들도 처리 시한을 넘겼다. 규제 샌드박스 관계자는 "부처 의견을 조회하고 설득하거나, 자료 보완을 요구할 때 소요되는 일수는 시한에 산입하지 않아 늘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훈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신속한 규제 확인, 특례 부여를 넘어 여기서 발견된 각종 법제 개선이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지만 현실은 이에 상응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제 규제 개선까지 연계하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규제 샌드박스는 형식적 제도 운영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