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의과대학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들이 12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심사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증원에 따른 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일부 대학들이 인증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다.
29일 전국 의대 평가인증기관인 의평원에 따르면 2025학년도 입학정원이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12월부터 본격적인 심사에 착수한다. 의평원 규정상 현 입학정원 대비 10% 이상 증원이 이뤄지는 등 주요 변화가 생길 경우 인증을 받은 의대라도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하고 인증평가를 받도록 돼 있다. 30개 의대는 연말 심사를 앞두고 다음 달 31일까지 의평원에 주요변화평가를 신청해야 한다. 의평원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들은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신입생 모집 정지, 폐교 등의 처분을 받는다.
의평원이 최근 30개 의대에 배포한 ‘주요변화평가 계획안’에 따르면 교수, 교육과정, 학생평가 등 51개 항목으로 인증평가가 이뤄진다. 2019년 도입한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ASK2019)’ 92개 항목 중 증원으로 큰 변화가 예상되는 항목 위주로 선별했다는 게 의평원 설명이다.
이번 인증 기준은 과거에 비해 대폭 강화된 것이다. 2017년 폐교 결정으로 이어진 서남대 의대의 인증평가는 15개 항목으로 이뤄졌는데, 그때보다 항목 수가 36개나 늘었다. 당시에는 교수 채용 기준이 아예 없었지만 이번에는 기초·임상의학 교수 확보, 교수 채용 기준 및 교수 지원 등 9개 관련 항목이 추가됐다. 교육과정 부문에서도 기초의학·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이 포함됐는지, 학생의 능동적 학습 참여를 위한 교육과정이 있는지 여부 등이 새로 포함됐다. 교육 기본시설과 학생이용시설 등 5개 항목으로 평가했던 교육자원 부문은 개인교수실 등 교수이용시설과 임상실습 관련 시설, 학술정보 서비스 등 15개 항목으로 늘어났다. 인증평가 횟수도 증원이 결정된 올해부터 졸업생 배출 전까지 6년간 매년 받도록 했다.
의평원 관계자는 "2017년 서남대 의대생들의 전북대·원광대 특별편입학 때와 달리 30개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판단에 따라 기준이 늘었다"고 했다.
대학들은 난색을 표했다. 홍원화 '의대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 회장(경북대 총장)은 “평가 항목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심사를 받는 대학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회 예산이 확정되는 일정과 대학 회계연도 등을 고려해 의대 교육 투자 계획은 내년 1월 이후에 제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의 한 국립대 의대 학장은 “정부가 국립대 의대 1,000명 충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기초의학 교수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당장 연말 기초의학 교수 수를 따지면 국립대 의대도 인증을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의대가 있는 비수도권 사립대 총장은 “국립대 의대와 달리 사립대 의대는 별도 재정 지원이 확정되지 않아 교수 채용이나 시설 확충 규모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의대생 수업 거부로 학사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연말 평가에서 교육과정까지 개편하는 건 무리한 요구 아니냐”고 반발했다. 앞서 30개 의대가 의평원 인증 기준에 따라 자체 조사한 결과 30개 의대 모두 불인증으로 나타났다.
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가톨릭대·고려대·서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교육부와 대학총장 대상 공개 질의 자료를 내고 "의평원 인증을 못 받을 경우 발생할 일부 의대 신입생 선발 불가 조치 등 혼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며 "내년도와 2026년도 의대 정원은 기존 정원을 유지하거나, 늘리더라도 10% 이내로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해당 의대들이 의평원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립대는 정부의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인증 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사립대들도 증원 요청 당시 시설 등에 대한 재정 계획이 잡혀 있었다"며 "기존에 인증을 통과했던 의대들인 만큼 주요변화계획에 따른 인증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의평원은 30일 '2024년도 의학교육 평가인증 주요변화평가 계획(안) 설명회'를 열고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인증 기준을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