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롤스로이스' 가해자, 2심서 징역 10년… 형량 '반토막'

입력
2024.07.26 16:51
1심서 징역 20년 중형 받았지만
2심 '사고 후 미조치' 혐의 무죄
"피해자 두고 고의 도주 증명 안 돼"

마약에 취해 고가의 외제차 롤스로이스를 몰다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을 들이받고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이른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가 항소심에서 대폭 감형을 받았다. 법원은 범인이 고의로 피해자를 두고 도주했는지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부장 김용중)는 2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모(28)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1심에 비해 형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건 항소심에서 사고 후 미조치 혐의와 도주치사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고 직후 휴대폰을 찾으러 간다며 현장을 3분 정도 이탈했다가 돌아와 휴대폰을 찾아달라고 한 것을 보면 약 기운에 취해 차량 안에 휴대폰이 있다는 점을 잊고 잠시 사고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사고 차량 운전을 인정하는 등 도주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지난해 8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에서 차를 몰다 인도로 돌진해 20대 피해자를 들이받은 후 구호 조치 없이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등을 통해 신씨가 케타민을 포함해 7종의 마약류를 투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범행 당일도 향정신성 약물을 투약하고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지난해 11월 끝내 숨졌다.

신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방문했던 병원에 피해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현장을 벗어난 것이라며 도주를 부인해 왔다. 반면, 검찰은 신씨가 병원과 약물 투약에 대한 말을 맞추기 위해 현장을 이탈한 것이라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신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한 점을 지적해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선 그러나 신씨의 도주 고의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을 낮추면서도 "사고 직후 피해자 구조에 힘쓰지 않았고 지인에게 증거인멸을 부탁하는 등 범행 후 정황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유족과 합의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다면서도 "피해자는 처벌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사망해 유족의 의사를 피해자의 (합의) 동의 의사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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