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당시 조선인 노동자의 실상을 알리며 '실질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양국의 쟁점인 '강제노역' 표현을 놓고 일본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인정할지가 막판 변수로 남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 "일본 측과 합의가 막판에 이르렀다"며 "내일 회의에서 한일 간 투표 대결 없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사도광산의 등재 여부는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결정된다. 한국을 포함한 21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등재가 확정되는데, 만약 반대의견이 나올 경우 투표 참여국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표대결로 가는 건 한일관계가 다시 냉각되는 것이어서 양국 모두 부담이 크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광산은 17세기 세계 최대 금 생산지로, 태평양전쟁 당시 군자금 조달의 핵심지역이었다. 당시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일해야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위한 실질 조치를 이미 취했다"면서 "이번에는 2015년 '군함도' 등재 시와는 달리 일본의 이행 약속만 받은 게 아니라 구체 내용에 합의하고 실질 조치를 끌어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한일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역사를 현지에서 전시하고, 추도하는 데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공식화된 후 협상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유족에게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시기를 에도시대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20세기 초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상황을 제외하려는 꼼수였다. 그러나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의 등재를 보류했다. 이코모스는 △사도광산의 시대적 경계 △유산 보호를 위한 완충지대 설정 △상업 채굴 금지 등 3가지를 보완하라고 했다. 아울러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시설을 갖추라고 권고했다.
앞서 2015년 7월 일본은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탄광을 비롯한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함께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일본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유네스코 문안에 반영하고,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의 역사를 다룬 기념관을 사도광산 인근에 개설한다면 이는 2015년 때보다 진전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를 제대로 부각하고 관련 시설물을 성의 있게 관리할지는 불투명하다. 2015년 군함도 논란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표는 "많은 한국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됐으며 가혹한 조건하에 강제노역을 당했다"고 했지만, 외무상이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강제노역'이 아닌 '일하게 됐다' 식의 강제성을 뺀 표현으로 자국민들에게 소개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forced to work'는 강제노역을 뜻하며 불법성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