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흑돼지로 만든 남아공 전통 소시지, 맛보실래요?"

입력
2024.08.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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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귀화한 남아공 출신 김앤디씨]
2013년 영어 강사로 전북 남원에서 취직
한국인 아내와 결혼 후 육가공업체 운영
고향의 맛 그리워 '빌통' 제작·판매
"남아공보다 한국서 삶 만족도 높아"

한적한 농촌마을인 전북 남원 주천면에는 범상치 않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진한 커피향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소시지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정체는 바로 이역만리 떨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방식으로 만든 소시지. 11년 전 한국에 영어 강사로 왔다가 2년 전 귀화한 남아공 출신 김앤디(37)씨가 3년 전부터 육가공업체(더더치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지난해 차린 카페에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서다. 여러 차례 방송을 타더니 외지인들도 찾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최근 기자와 만난 그는 "한국의 소시지는 다양한 부위를 섞어 만들어 햄에 가깝고, 저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뒷다리와 어깨 살만 사용해 고기맛이 더 강하다"며 "천일염, 고수씨앗, 흑후추 등 향신료도 직접 배합해 만들어 고기 본연의 맛과 쫄깃함을 살리면서 풍미도 더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공 사위로도 유명하다. 남원이 고향인 영어 강사 김경은(40)씨와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통해 스승과 제자로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아예 눌러앉았고, 딸(4)도 있다. 영어 강사 대신 사업가로 변신한 것도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빌통은 남아공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한국의 김치로 통해요. 남아공에서 자주 먹었던 '빌통'을 집에서 조금씩 만들었죠. 친구·지인에게도 나누다 보니 수요가 점점 늘었어요."

결국 김씨는 한 달에 250만 원 정도 버는 강사 일을 그만두고 사업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2021년에 대출 6,000만 원을 받아 육가공업체(140평)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카페(약 20평)는 대출 없이 자금 5,000만 원 들여 문을 열었다"며 "사업 초기 매출이 낮아도 직원이 없다 보니 벌이가 더 나았다"고 말했다.

손재주도 그의 밑천이다. 카페는 허름한 원룸을 사들여, 김씨가 직접 건물을 부수고 재건축한 뒤 내부 인테리어만 전문가에게 맡겼다. 새하얀 벽에 은은한 노란빛 조명, 목재를 기반으로 한 창틀과 탁자 등으로 꾸몄다. 공장 역시 김씨가 손수 만들었다. 그는 "남아공에서는 건축이나 기기 수리 등은 전문 업체를 부르기보다 직접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능력"이라고 말했다. 공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김씨가 해결한다.

주 업무인 소시지와 빌통(biltong.수제 육포) 제조도 손수 도맡아 해 하루 일과는 쉴 틈이 없다. 빌통은 돼지고기를 잘라 소금과 식초에 절인 뒤 상온에 이틀간 건조하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품이 많이 든다. 김앤디표 소시지는 한국인 입맛에 맞춰 남원 흑돼지를 주재료로 남아공 전통 기법을 접목해 만들고 있다.

2013년 남원영어체험센터에 취직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2년만 머물 계획이었던 그는 자연과 사람에 매료돼 정착했다. "주말마다 올랐던 지리산 구룡계곡에 있는 정자(육모정, 六茅亭)에서 바라본 자연 정취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친절한 주민은 물론 언제든 도움받을 수 있는 행정시스템도 정말 좋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남원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지리도 잘 몰랐던 데다 지역에서 보기 드문 외국인이어서인지 지역 주민과 가까워지기 쉽지 않았다.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낼 때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 경은씨를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다. 한국말도 금방 늘었고 한국 문화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애국가까지 달달 외워 어려운 귀화 시험에 통과한 뒤에는 '김앤디(金앤디)'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증도 얻었다. 그는 '남원 김씨'다.

"친구 추전으로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이제는 김치·된장찌개·청국장 등 한국의 대표 발효음식도 잘 먹는 완전한 한국인이 다 됐네요. 머나먼 타국에서 고향의 맛을 알리며 미래를 꿈꿀 수도 있어 행복해요."


남원=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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