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도시에 가면 빌딩숲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건축물 한두 개쯤은 만난다. 이런 마천루는 지도자 과시 욕망의 결정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좀 더 신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바벨탑을 세웠다지만, 역대 권력자들은 크기와 높이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려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마천루는 남근의 발기능력을 과시하는 상징”이라고 했다.
□ 높이 경쟁은 끝이 없다.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방문했다면 한 번쯤은 봤을 내셔널몰의 워싱턴기념탑. 미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오벨리스크 형태의 탑 높이는 170m다. 남북전쟁 탓에 착공 36년 만인 1884년 완공되며 세계 최고(最高)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잠시였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보다 2배 가까이 높은 324m의 철탑, 에펠탑이 공개됐다. 보불전쟁(1870~71)에서 독일에 참패한 굴욕을 딛고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1930년 뉴욕에 크라이슬러 빌딩이 들어서기까지 41년간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켰다.
□ 현존 최고 빌딩은 2010년 완공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160층짜리 부르즈할리파다. 높이가 828m다. 2위가 올 초 선보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의 메르데카118 빌딩(679m)인데 그보다 150m가량 높다. 두 건물 모두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지었다. 10위권에 가장 많이 포진한 국가는 중국(5개)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123층 롯데월드타워(555m)는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세훈표 초고층 랜드마크’ 서너 개쯤은 남겨야 한다는 강한 의욕을 보인다.
□ “시민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며 물러섰지만 광화문광장에 100m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는 뜻을 완전히 접지는 않고 있다. 20년 묵은 ‘상암 DMC 100층 랜드마크’ 사업도 지난해 다시 꺼내 들었지만 거듭된 유찰로 쓴맛을 봤다. 이뿐 아니다. 첫 임기 때 실패한 용산 150층 초고층 빌딩은 이번에 100층으로 낮춰 재추진하겠다 한다. 당초 105층에서 55층 2개 동으로 설계를 변경하려던 현대자동차의 삼성동 GBC 계획에도 공공기여 재협상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산업혁명 시대 상징이랄 수 있는 마천루가 AI와 친환경시대에도 효과적 상징물인지는 잘 따져볼 일이다. ‘허영(虛榮)의 높이’에 대한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