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에 가전제품을 사러 갔다. 바꾸는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가전제품을 사야 해서 오프라인 종합 매장부터 백화점까지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사야 할 건 많았고, 알아야 할 건 더 많았지만 난 준비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상태로 매장에 가니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게 뭐예요?"였다. 매장 매니저분들은 고유의 영업스킬과 함께 여러 모델을 제시해주셨다. 동시에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 등 처음에 고려하지 않은 품목도 함께 제안했다.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니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웃겼다. 남들이 어떤 가전을 사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자문했다. 많은 사람이 쓰는 가전제품을 쓴다고 해서 전기료가 할인되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산다고 내가 따라 사면 가격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린 참 남들 눈치를 많이 본다. 물건을 살 때는 무엇이 인기가 많은지, 영화를 볼 때는 인기 차트에 무엇이 있는지, 옷을 살 때는 요즘 무엇이 유행인지 찾아본다. 콘텐츠에서도 그 차이가 보인다. 과거 한국 음원 서비스는 개인화보다는 인기 차트를 먼저 보여줬다. 반면 미국의 음원 서비스는 인기 차트보다는 개인화를 내세웠다. 차이가 명백히 보인다. 마냥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안정성을 증명하기 때문에 이를 선택하는 것도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소비를 넘어 삶에 있어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고 비교하기 때문에 문제다.
10대 때부터 돌아보자. 청소년기에는 소위 '엄마친구아들'과 비교되고, 청년기에는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 가고 싶어 한다. 취업 이후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지인의 호텔 바캉스에 부러움을 느끼고, 남들만큼 화려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 아등바등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비슷하다. 남들만큼 좋은 것을 해주고 싶고, 남들만큼 지원해주고 싶다. 남들만큼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가뜩이나 치열한 삶을 더욱 과열시키고 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그저 남들만큼 살고 싶었다"고 말하며 후회하는 인물들을 본다. 그곳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다. 우리는 항상 나보다 더 나은 남들을 상정한다. 그렇기에 닿을 수 없는 태양에 도전하는 이카루스처럼 끊임없이 좌절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다. 100을 벌면 1,000을 버는 남들과 비교하고 1,000을 벌면 1만을 버는 남과 비교한다. 결국 삶의 축이 나에게서 남으로 바뀌고 우리는 남들이라는 줄에 걸린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필요한 가전제품만 샀다. 다들 사는데 나는 사지 않았다고 해서 더 불편한 건 없었다. 삶도 비슷하다. 우리는 모두 안다. 각자 삶의 주인공일지언정 사회의 멋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내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100%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원하는 대로 되는 삶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남들만큼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남들만큼 하기 위해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하기도 한다. 남들만큼 살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나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자. 삶의 축을 남들에게서 나에게로 돌려보자. 남들이 많이 사는 것보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남들이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