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가 노벨상을 사후 수상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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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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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다그 함마르셸드- 2

(이어서) 노벨위원회가 1961년 10월 다그 함마르셸드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사후수상은 원칙 위반'이라며 반발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노벨재단 정관에 따르면 노벨상은 생존자에 한해 후보를 추천받아 심사하지만, 같은 해 2월 1일 이전에 이미 후보로 선정된 경우 사후 수상이 가능했다.
사후에 노벨상을 받은 이로는 스웨덴 시인 에리크 악셀 칼펠트(1864.7~1931.4)가 사후인 그해 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선례가 있었다. 1907년부터 노벨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던 그는 1918년 자신이 노벨문학상 최종후보에 포함되자 “위원이 어떻게 상을 받을 수 있느냐”며 사양했고,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않았다. 재단 측은 그의 수상은 엄밀히 말하면 사후 수상이 아니라 유예된 수상이라고 해명했다.

노벨재단은 1974년 정관을 개정, 수상자가 발표 후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수상을 허용하기로 결정했고, 캐나다 면역학자 랠프 스타인먼(1943.1.14~ 2011.9.30)이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타인먼은 수상자 발표 사흘 전에 숨졌지만 재단 이사회는 법령 등을 검토, 그의 수상 자격을 인정하기로 했다.

1961년 노벨위원회는 “유엔 헌장에 명시된 원칙과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국제기구로 유엔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 함마르셸드에게 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콩고에 대한 유엔 정책, 즉 함마르셸드의 평화주의를 친소비에트적이라며 비난하며 유엔에서 미국대표부를 철수시킬 것이라고 압박했던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3월 스웨덴 대사(Sture Linnér)와의 면담에서 콩고 정책에 관한 한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며 “함마르셸드에 비하면 나는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우리 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