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와 죽살이

입력
2024.07.24 18: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미라는 섬뜩하다. 기괴한 모습은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라를 본 후 그 느낌이 사라졌다. 내 가족, 친척, 이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라는 포르투갈어 미라(mirra)가 일본을 거쳐 우리말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썼던 몰약 미르라(myrrha)가 어원으로, 영어로는 머미(mummy)다.

지난 주말 국내 첫 미라 연구가인 김한겸 고려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500년 전 20대 임신부와 600년 전 장군의 미라를 봤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임신부는 눈·코·입·귀에 까만 머리카락까지 그대로 갖고 있었다. 김 교수는 이집트 미라와 달리 우리나라 미라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몸속 장기가 보존돼 있어 내시경 검진에도 성공했단다.

'죽살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죽음과 삶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죽음이 삶 앞에 나온 게 묘하다. 죽음을 생각하며 바르게 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인간사 가장 원초적 문제인 죽음. 그 죽음을 표현하는 말은 다양하다. 죽다, 숨지다, 삶(생)을 마감하다, 돌아가(시)다는 물론, 사망 타계 별세 서거 사거 작고 영면 붕어 승하 등 한자어는 손에 꼽고도 남는다.

종교에 따라서도 죽음은 달리 표현된다. 가톨릭에선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인 선종으로 죽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입적 열반 입멸이라고 한다. 개신교의 소천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눈감다’는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눈감다’와 ‘눈뜨다’는 우리 삶에 중요한 관용 표현이다. '눈뜨다'는 잘 알지 못했던 이치나 원리 등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 나이가 들면 학문에 눈뜨고, 사랑에 눈뜨고, 현실에 눈뜨기도 한다. 죽음을 뜻하는 ‘눈감다’와 깨우치다는 의미의 ‘눈뜨다’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세상을 떠나다(뜨다)도 죽음을 뜻하는 완곡한 표현이다.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갔다는 의미다. ‘유명을 달리하다' 역시 죽음을 뜻한다. 유(幽)는 어둠으로 저승을, 명(明)은 빛으로 이승을 말한다. 죽음을 속되게 표현한 '뒈지다'도 표준어다.

김 교수 말에 따르면 현재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냉장고와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에 수백 년 된 미라 여덟 분이 누워 있다. 발견 당시 입고 있었던 옷, 장신구 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됐다. 그런데 식생활, 질병 등 과거의 생활상을 모두 품은 사람(미라)은 푸대접받고 있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미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노경아 교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