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맙다"...韓 대중문화계 거목 김민기, 73년 인생사 마침표 [종합]

입력
2024.07.22 12:23
'아침이슬' 원작자, 91년 대학로 소극장 학전 개관 후 문화계 이끌어
국내 문화예술인 산실 된 학전, 청소년·아동극 뿌리 지키기에 앞장
경영난 가중·김 대표 위암 투병 속 지난 3월 학전 폐관

'아침 이슬' '친구' 등을 남긴 포크계의 대부이자 국내 대중문화 예술인들의 '산실'로 불린 대학로 소극장 학전의 설립자인 김민기 대표가 위암 투병 끝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학전 측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1일 암 투병 끝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이날 오후 12시 30분부터 조문을 받는다.

1970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인 '아침 이슬'의 원작자인 김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대표곡 때문에 험난한 청춘을 보냈다. 유신 정권이 들어선 뒤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아침 이슬'이 시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로 불리게 되면서다. 당시 '아침 이슬'이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위 현장 곳곳서 불리며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으면서, 원작자인 김 대표 역시 오랜 시간 활동에 대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이후 군대에 다녀온 김 대표는 노동 현장으로 향해 '상록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었다. 공장과 탄광 등에서 80년대를 보낸 그는 1991년 3월 종로구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했다.

학전은 33주년을 맞은 올해 김 대표의 암 투병과 경영난으로 인해 폐관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예술 장르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학전은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했고, 간판 공연인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학전만의 특색을 담은 공연을 기획·제작하며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의 성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김 대표는 학전 설립 이후 꾸준히 청소년, 아동극을 무대에 올리며 국내 대중문화를 위한 의미있는 행보를 이어왔다.

뿐만 아니라 학전은 가수 윤도현·박학기·동물원·유리상자·이은미·자전거탄풍경·김현철·한영애·이두헌(다섯손가락)·강산에, 배우 황정민·설경구·장현성·김윤석·조승우 등 수많은 국내 문화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성장시키며 '예술인의 산실'로 불려왔다.

뚝심 있는 행보 속 김 대표는 대한민국 대중예술의 독자성을 첫 구현한 한국 대중문화사의 자존심으로 오랜 시간 예술인들에게 존경을 받아왔다. 앞서 학전의 폐관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학전이 배출한 많은 대중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학전 어게인' 공연을 진행하며 학전 살리기에 나서는 한편, 김 대표의 건강 회복을 기원했다.

이날 김 대표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학전 측은 종로구 학림에서 취재진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짧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학전 김성민 팀장은 "(김 대표가) 집에서 잘 계시다가 급작스럽게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20일 오전 응급실로 옮겼고 21일 오후 8시 26분 돌아가셨다"라고 밝혔다.

고인이 전한 마지막 말은 "그저 고맙다"였다. 김 팀장은 "생전 늘 하신 말씀은 '그저 고맙다'였다"라며 "'고맙지. 할만큼 다 했지. 네가 걱정이지'라는 말씀을 하셨다"라고 전했다. 학전 측은 김 대표의 유언장은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김 대표가 생전 남긴 말은 장례가 끝난 후 정리해 공개하겠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 앞으로 학전에서 '지하철 1호선' 등 학전의 기존 레퍼토리 상연 역시 막을 내릴 전망이다. 김 팀장은 "앞으로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의 추모 공연 등 역시 고인의 뜻에 따라 별도로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별세에 학전 출신 예술인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8시에 엄수되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홍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