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24조 원+α' 규모 새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뽑히면서 한수원과 민관 합동팀을 꾸려 원전 기자재를 공급하기로 한 두산에너빌리티도 날개를 날았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한수원과 함께 수주 잭폿을 터트린 이 회사는 오랜 기간 현지 사업을 통해 현지 업계와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고 적극 협력을 약속해 신뢰를 더한 점이 정부의 협상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시장에 원전 사업 교두보를 마련한 이 회사는 현지 업체들과 함께 유럽 시장 원전 추가 수주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18일 두산에너빌리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앞으로 진행될 사업에 체코 현지 자회사를 적극 참여하게 할 예정이다. 원자로, 증기 발생기 등 1차 계통 핵심 주기기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공급하고 증기터빈 등 2차 계통 핵심 주기기는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맡는다. 1869년 설립된 체코의 터빈 전문 제조사인 스코다파워는 2009년 두산이 인수해 현지 공장을 운영해왔다.
이번 사업을 통한 현지 기술 이전 약속도 구체적으로 했다. 이 회사는 자사가 가진 수소∙가스터빈 등 무탄소 발전 기술을 이번 사업을 통해 두산스코다파워에 제공할 계획이다. 오래전 시작된 현지 투자로 이번 원전 수주 시 체코가 유럽 내 무탄소 발전 전초 기지로 떠오를 수 있게 돕는다는 약속이 뜬구름 잡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줬다는 설명이다.
현지 산업계와의 협력 실적을 근거로 윈윈 전략을 강조하며 공개 설득에도 나섰다. 앞서 두산그룹은 5월 13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현지 정부, 금융 기관, 기업 관계자와 언론인을 초청해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열었다. 박정원 회장은 당시 "두산은 에너지 및 기계 산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체코 정부를 비롯해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왔다"며 "앞으로도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산에너빌리티에 원전 수주를 맡기면 체코 업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2007년 인수한 미국 소형 건설기계 회사인 밥캣을 인수해 세운 두산밥캣의 유럽∙중동∙아프리카 법인(EMEA)과 사업장(공장)도 체코에 둬 일자리를 창출했다.
두산그룹 체코 현지 법인은 지역 사회 공헌 활동도 열심이었다. 한 예로 두산스코다파워는 사업장이 있는 플젠(Plzen)시에서 전문 기술인 양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고등학생 대상 직업훈련센터, 대학생 대상 논문 공모전 등을 운영하며 현지인에게 기술 체험과 연구활동 기회를 줬다는 설명이다.
앞으로도 두산은 현지 업체와 손잡고 유럽 시장 진출 확대 기회를 찾을 심산이다. 두산스코다파워를 중심으로 원전 기자재 납품과 시공에 현지 협력업체의 조달을 받아 원전을 제때, 완성도 높게 짓겠다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한수원이 공사 일정을 세부 조율해 시공 일정이 나온 뒤에는 현지 협력 업체와 팀을 구성해 일정을 조율하고 공사에 들어간다"며 "체코에 완성도 높은 원전 생태계를 만들어 놓으면 인근 시장 공략도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뿐 아니라 불가리아, 루마니아, 영국, 프랑스 등 많은 유럽 국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을 추가로 지으려 하고 있다. 때문에 현지 업체와 높은 기술 수준의 원전 생태계를 갖춰놓으면 빠른 시간 내에 낮은 조달 비용으로 인근 국가에 양질의 원전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 시장 원전 추가 수주의 지름길이 될 것이란 게 이 회사의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