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울 곳곳 '물 폭탄'… '장마 공포'에 잠 못 이루는 침수 상습 지역

입력
2024.07.18 17:18
새벽부터 서울 전역 '호우 경보' 발령
"반지하 또 잠길까" 불안한 관악·동작
'상습 침수' 강남역 일대도 긴장 흘러



“어젯밤 빗소리 들릴 때부터 한숨도 못 잤죠.”

1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앞에서 만난 정모(70)씨는 걱정스레 우산을 받쳐들었다. 이 건물 반지하에서 11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2년 전 수도권 일대 폭우로 같은 동네 세 모녀의 목숨을 앗아간 침수 사고가 발생한 뒤 '장마 공포증'이 생겼다. 당시 정씨도 물이 가슴 높이까지 찬 집에 수십 분간 갇혀 있었고, 이웃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다. 올해 장마가 시작된 전날부터 그는 30분에 한 번씩 집 밖으로 나가 하수구에서 빗물이 역류하진 않는지, 현관문은 제대로 열리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우산을 때리는 빗발이 거세지자 정씨는 몸을 움찔 떨었다.

우리 집 또 물에 잠길라...'바짝 대비'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흘째 집중 호우가 쏟아지며 침수 피해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서울 전역에는 이날 오전 7시쯤 호우 경보가 떨어졌고, 경보 수준도 전날 밤 '주의(비상근무 1단계)'에서 '경계'로 한 단계 격상됐다. 시간당 20㎜ 안팎의 강한 비가 내리면서 서울 곳곳에서 사건 사고도 발생했다. 새벽 성수대교 남단에서 차량 미끄러짐 사고가 났고, 정오쯤 종로구에선 주택 축대가 무너져 차량이 손상됐다.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 빗줄기에 침수가 매년 상습적으로 발생하거나, 호우에 의한 사망사고를 겪었던 지역의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에서만 30년을 산 이양순(77)씨도 그중 한 명이다. 2022년 8월 이곳 일대에 시간당 141.5㎜의 비가 내려 주택 반지하 층에 살던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비 많이 오는데 괜찮냐'는 전화가 아들, 딸, 친구 가리지 않고 수십 통이 왔다"며 "불안한 마음에 주택 앞 배수시설이 멀쩡히 잘 작동하는지 수시로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수해로 반지하 주택에 살던 50대 여성이 사망한 동작구 상도동도 호우 대비에 분주했다. 다세대 주택 창문에 설치한 물막이판을 점검하던 한 60대 주민은 "비를 막아준다고 해서 일단 설치했다"면서도 "하수구에서 역류하거나, 현관을 통해 들어오는 물에 대한 대안은 아니라서 여전히 걱정은 된다"고 토로했다.

강남역 일대도 '긴장'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침수지역인 강남역과 신논현역 일대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2022년 집중호우 당시 이 일대 약 2만㎡ 등 축구장 7개 면적이 물에 잠겼다. 주변보다 지대가 낫고 빗물이 고이기 쉬운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출퇴근 인원 등 오가는 인파가 많아 한 번 물이 들이차면 피해가 커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날 만난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언제든 수해가 재발할 수 있다"며 입 모아 걱정했다. 신논현역 인근에서 30년 넘게 철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사고 이후 공사를 해 물이 잘 빠지는 편이고, 맨홀 뚜껑도 열리지 않게 나사를 조여두는 등 (호우에) 단단히 대비했다"면서도 "반지하에 살거나 가게 연 사람이 여전히 많아 우려가 된다"고 했다. 강남역 부근에서 40년 이상 약국을 운영 중이라는 김모(74)씨도 "재작년만큼 비가 많이 오진 않지만, 구청에서 나눠 준 물막이판을 창고에서 미리 꺼내뒀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비는 18일 오후부터 그쳤다가 19일 낮에 다시 시작돼 2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 평균 30~100㎜, 많은 곳은 최대 150㎜ 이상 내릴 전망이다.

이유진 기자
전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