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 전단에 나온 살해 용의자와 비슷한 사람을 봤어요.”
지난 2월 경기 시흥경찰서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16년 전인 2008년 경기 시흥의 한 슈퍼마켓에서 점주를 살해한 뒤 달아난 유력한 용의자 A씨를 직접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A씨의 범행 장면이 매장 내 폐쇄회로(CC)TV에 촬영됐는데도 경찰이 신원 파악에 실패하면서 미궁에 빠진 대표적 장기 미제 사건이다.
신빙성 있는 제보로 판단한 경찰은 곧 재수사에 착수했다. 제보자가 목격한 인물이 A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의 금융거래 내역과 통화 내용을 분석했더니 과거 사건 발생지인 시흥시와 주변 도시에서 생활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결정적 단서도 확보했다. 2017년 제작한 수배전단에 담긴 CCTV 화면 속 범인과 제보자가 목격한 인물의 연도별 사진을 확보해 영상분석 전문업체에 의뢰한 결과, 두 사람이 동일인일 가능성이 92% 이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5개월 수사 끝에 경찰은 제보자가 목격한 인물이 A씨임을 확신했다.
명확한 물증까지 찾아낸 경찰은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14일 오후 7시 53분 경남에 소재한 자택에서 나오던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시흥경찰서로 압송된 A씨는 처음에는 “기억이 안난다”고 입을 다물었다.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그는 결국 검거 사흘 만인 17일 눈물을 흘리며 “내가 점주를 흉기로 찔렀다. 죄송하다”고 자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범행 이틀 전인 2008년 12월 7일 새벽 당시 집 근처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잠이 든 40대 점주 B씨 뒤에 있는 현금이 든 금고를 보고 이를 훔칠 것을 결심했다. A씨는 사건 당일 흉기를 가방에 넣고, B씨가 잠들었을 만한 시간대인 오전 4시쯤 슈퍼마켓에 침입, 금고를 열어 현금을 훔치려고 했다. 하지만 B씨가 잠에서 깨어나자 “가만 있으라”고 협박했으나, B씨가 저항하자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범행 후 집으로 돌아가 흉기와 혈흔이 묻은 옷을 등을 버린 뒤 자신의 차로 대전과 진주를 거쳐 마산 본가로 가 숨어지냈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DNA를 발견하지 못했고, 주변 탐문 수사에서도 이렇다할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던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는지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수사 기록과 현장 CCTV 영상 분석, 참고인 진술 등 심도 있는 수사를 진행해 16년이 지난 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며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조금이나 위로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