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검찰이 한반도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하면서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들과 접촉하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공개하자 그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정보·외교분야 전문가들은 "경솔한 국정원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규정에 따라 신고하지 않는 테리의 개인 비리"라며 의견이 엇갈렸다. 이번 사안이 한미 양국의 갈등 현안으로 비화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한국 전문가들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의 핵심은 '협조자'인 테리 연구원의 활동이 적법한지다. 협조자는 일시적으로 정보기관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제3자를 뜻한다. 주재국(미국)과 상대국(한국)을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간첩'과는 다르다.
그러나 미 수사당국은 테리 연구원이 협조자를 넘어 사실상 외국 정부를 대리하는 정보관으로 활동하면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필요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더 큰 문제는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의 FARA 위반 여부와 미 당국의 감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18일 "협조자를 이용한 정보활동에서 협조자의 윤리의식도 꼼꼼하게 확인해봐야 한다"며 "이를 국정원이 살피지 않은 건 분명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직 국정원 인사는 "미국이 적성국가도 아닌데 (한국의) 전형적인 구태가 공개됐다"며 "국격과 정보환경에 맞는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뉴욕남부지검의 공소장에는 국정원의 허술한 정보활동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국무부의 비공개회의 직후 한국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에 테리 연구원을 태운 게 대표적이다. 주미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은 "국정원은 과거에도 금품을 주고 정보를 얻다가 추방당한 적이 있다"며 "전례를 고려해 자제했어야 하는데 경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미관계를 흔들 외교 현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테리 연구원은 언론 노출도가 높은 사람인데 유쾌하지 않은 방식의 정보활동이 이뤄지니 적법성을 따졌을 것"이라며 "경고성이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외교 현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FBI(연방수사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테리 연구원은 자신의 행동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국정원 직원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단순한 공개 정보활동으로 여겼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FARA법을 위반한 사람이라면 상원의원부터 민간인까지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면서 "국정원에서 주의하고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미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는 전직 외교관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해외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주위 환기 차원의 기소"라고 풀이했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한미관계를 연구하는 한국 연구기관의 임원은 "예정됐던 일부 1.5트랙(정부+민간) 모임이 취소됐다"며 "브루킹스연구소도 FARA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은 이후 활동이 위축됐다. 당분간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인사는 "가뜩이나 한국계 미국인 연구자나 관료는 늘 의심을 받기 때문에 미 정부보다 더 강경한 태도로 발언하거나 분석해왔다"면서 "앞으로 한국 당국자들과 접촉할 때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