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과 장마가 겹치는 여름은 백화점·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비수기로 꼽힌다. 쇼핑 수요가 줄기 때문에 비용(판촉·마케팅)을 최소화하고 ‘여름잠’을 자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유통업계가 여름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 휴가 트렌드 변화, 날씨 특수, 온라인 채널 성장 등이 맞물리며 “성수기 정도는 아니지만 여름도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 여름 마케팅이 뜨거워지는 배경이다.
현재 유통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휴가 트렌드의 변화다. 무엇보다 ‘7말 8초(7월 말~8월 초)’ 여름휴가 공식이 깨지고 있다. 돈이 많이 드는 한여름 대신 봄, 가을 등 비(非)성수기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또 먼 바닷가나 해외여행 대신 도심에서 즐기는 휴가족도 적지 않다. 그만큼 여름철 유통업계의 잠재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백화점이 6월 28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내 3,300㎡(약 1,000평) 규모로 마련한 ‘포지타노의 태양’ 행사장에는 하루 평균 1만 명이 찾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포지타노를 본뜬 공간이다. 지역 특산물인 레몬나무 수십 그루를 꾸미고 이탈리아풍 상점을 줄지어 배치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한여름 해외로 떠나는 대신 도심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는 2030을 대상으로 ‘실내 바캉스’ 공간을 꾸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라고 했다.
폭염, 장마는 오히려 호재가 되고 있다. 더위나 비를 피해 백화점이나 마트에 머물면서 쇼핑과 식사 등을 즐기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역대급 무더위가 찾아온 6월(1~26일) 이마트와 롯데마트 식당가·푸드코트 매출은 1년 전보다 각각 25%, 15% 상승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교외로 나가기 어려운 폭염, 장마 땐 키즈카페와 식당, 쇼핑 시설이 있는 마트로 나들이 오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5월 4~6일) 당시 비가 오면서 신세계그룹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하루 평균 12만 명이 몰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마철에 매출이 떨어지는 편의점은 배달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장마 기간인 이달 1~5일 편의점 GS25의 퀵커머스(즉시 배달) 매출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43.8% 늘었다. 궂은 날씨에 외출하지 않고 도시락 같은 간편식을 주문하는 고객이 많다는 의미다. 배달 매출이 장마철 매출 감소를 일정 부분 방어해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물론 유통업계는 “여름이란 계절적 한계는 존재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화점의 경우 티셔츠 등 여름옷 단가가 낮아 여름 매출은 겨울의 8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마트 또한 여름 매출이 설·추석이 끼어 있는 겨울·가을 매출과 비교해 70~80%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백화점·마트들은 지금과 같은 단순 상품 판매 모델로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점포를 오락·휴식·체험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단순 패션 매출 비중이 높은 점포들은 6~8월에 타격을 크게 받는 반면 쇼핑과 여가를 한곳에서 즐기는 ‘몰링형(malling)’ 점포들은 잘 대응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요즘은 업계가 여름에 예술 전시나 특색 있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열면서 여름 고객을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