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식 걷어찬 무능력 국회... 헌정사 새로 쓰는 극한의 대립

입력
2024.07.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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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이런 적은 없었다. 22대 국회 개원식이 또다시 뒷전으로 밀렸다. 국회의 생일 격인 제헌절을 하루 앞둔 16일에도 여야는 등을 돌렸다. 오랫동안 지켜온 국회의 소중한 전통을 극한의 대치정국이 걷어찼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개업을 준비하고는 식당 간판을 내걸지도 못하고 영업하는 셈이다.

총선이 끝난 지 석 달 넘게 지났다. 그사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고 국회의장도 뽑고 여당이 슬그머니 합류해 상임위도 가동하고 있지만 개원식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축제는커녕 마주 앉기조차 버거우니 윤석열 대통령도 국회를 찾을 명분이 없는 처지다. 협치는 실종되고 타협은 사라지고 국회는 스스로의 권위를 깎아내렸다.

개원식은 말 그대로 새로운 국회 임기를 기념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막중한 의미를 갖는다.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행정부 수장이 국회의 권위를 인정하며 협치를 공언하고, 입법부는 성실한 의정활동을 약속하는 상호 신뢰의 자리다. 개원식이 법적으로 규정된 행사는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입법부의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4년 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하지만 제헌절의 상징성을 감안해 하루 전날 극적으로 개원식을 열었다. 그럼에도 21대 국회는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사상 최악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보다도 못한 셈이다. 서로 앞뒤 가리지 않고 반대하는 통에 곳곳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널려 있다.

발단은 '채 상병 특검법'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 '탄핵 청문회'가 쐐기를 박았다. 거대 야당은 대통령을 정조준하며 정권을 뒤흔들려는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소수 여당은 국민적 의혹이 차고 넘치는데도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처럼 '노답'으로 치닫다 보니 국회의 한 축인 여당이 대통령에게 개원식 불참을 건의하는 해괴한 광경마저 연출됐다. 역대 국회 개원식에 대통령이 불참한 전례는 없다.

그사이 국회에서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벌어졌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원식을 열자고 촉구하며 여야를 향해 "직무유기"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한쪽이 일하지 않겠다 고집을 피운다(박찬대 원내대표)", 국민의힘은 "원인 제공자가 누군데(추경호 원내대표)"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야 원내사령탑은 남 탓에 그치는 답답한 모습이다.

개원식이 끝내 무산되면 대화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의회정신도 함께 몰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여야 모두 공멸이 불가피하다. 이런 국회에 민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후과는 고스란히 여야의 몫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표를 던진 정당과 후보에 대해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겠다." 개원식 때마다 읊는 의원 선서에 담긴 내용이다. 물론 각자의 굳센 각오를 끝까지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다짐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매정한 국회다.

우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