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방화→폭탄 테러"... 나토 겨냥한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 진화

입력
2024.07.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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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대리인' 활용한 러 하이브리드 공격
나토, 10일 공동성명서 "추가 조치 결정"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벌이는 이른바 '그림자 전쟁'이 더 넓게, 더 과감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2022년 2월 자국이 침공한 우크라이나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방해하려는 러시아의 공작이 점점 치밀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림자 전쟁이란 사이버 공격, 허위정보 유포 등을 통해 사회 불안을 부추기고 균열을 내는 전략으로, '하이브리드 공격'으로도 불린다.

미국 CNN방송은 10일(현지시간) 나토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지난 6개월간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이 전례 없이 확대·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나토 무기 공급 라인에 대한 '물리적 파괴 공작'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는 게 CNN의 진단이다.

러, '대리인 동원' 하이브리드 공격

CNN에 따르면 최근 유럽 전역에서 펼쳐지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현지의 아마추어 동원'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러시아 정보 요원으로 추정되는 '안제이'(가명)와 텔레그램을 통해 접촉한 우크라이나인 '막심 L'(가명·24)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쟁 발발 후 폴란드로 넘어간 막심은 안제이로부터 7달러 상당 가상화폐를 받고 '전쟁 반대' 그라피티(공공장소 벽화 그리기 운동)를 그렸다. 너무 쉬운, 게다가 용돈 벌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안제이의 주문은 점점 더 과감하고 위험해졌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도시 메디카의 철도 선로를 따라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달라", "폴란드 소재 우크라이나 운송 회사의 울타리를 불태우라" 등의 요구를 받았다. 막심은 CNN에 "(그때만 해도)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군 훈련기지 밖에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폴란드 정보 당국에 체포됐고,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타깃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경로

러시아 배후 가능성이 큰 하이브리드 공격은 대(對)우크라이나 군사적·인도적 지원 경로에 집중돼 있다. 올해 5월 독일 베를린 외곽의 방산기업, 우크라이나군에 제공되는 단거리공대공 미사일 IRIS-T를 생산하는 '딜' 공장에서 발생한 의심스러운 화재가 단적인 경우다. 또 영국 런던 경찰은 지난 3월 런던 동부 우크라이나행 보급품 창고 화재 사건과 관련, 용의자를 방화 및 러시아 등 외국 정보기관 지원 혐의로 기소했다. 올가 라우트만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흐름을 꺾는 게 러시아의 목표"라고 CNN에 말했다.

물론 러시아는 '근거 없는 의혹'이라며 발뺌하고 있다. 실제 하이브리드 공격은 현지인, 아마추어 대리인을 내세우는 탓에 러시아와의 연결 고리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한 회원국 공격을 전체 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하는 원칙(나토 조약 5조)이 무력해지는 지점이다.


나토 "하이브리드 대응 추가 조치 결정"

나토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핵심 의제로 삼은 올해 나토 창립 75주년 정상회의(9~11일)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전쟁을 '구체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나토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위협 또는 행동에 개별적·집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음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접근 권장 사항을 개발할 것이라는 방침도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