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간판 갇혔던 '동물농장 고양이' 근황..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

입력
2024.07.11 09:00
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 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어머, 귀여워.”

다소 나른할 듯한 봄날의 오후 3시경.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고양이 보호소 ‘온캣’ 사무실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활동가들이 CCTV 화면에 잡힌 두 마리 고양이가 나란히 캣타워 위에 몸을 기대며 웅크린 모습을 본 겁니다.

이렇게 심쿵한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기는 여간해서는 어렵다고 합니다. 묘사 안에 사람이 들어가면 이 고양이들은 모두 숨숨집 안으로 도망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뒷조사 전담팀’이 이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을 때, 다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재용이’가 촬영에 잘 협조해 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낯선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재용이는 몸을 잔뜩 웅크리며 귀를 아래로 접었습니다. 두려움의 뜻이었습니다. 잠시만 인사를 하려고 해도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재용이는, 소위 '극대노'의 표현인 하악질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메라를 현장에 놓아둔 뒤, 묘사를 비워둔 뒤 CCTV를 통해 현장을 보며 재용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재용이가 온캣에 들어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건물 간판서 수개월간 ‘생사의 외줄타기’하던 냥이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서 갇히게 된 걸까?’ 보는 사람 모두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이천시 소재 건물 5층 간판 속에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재용이였습니다.

수개월 동안 간판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재용이를 처음 발견했던 시민이 옥상에서 낚시줄을 이용해 사료와 물을 꾸준히 제공해 준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 고립된 고양이를 수차례 구조한 경험이 있는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매우 긍정적인 최초 발견자의 대응”이라고 말했습니다. 먹이를 주면서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구조가 이뤄지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임시 조치란 뜻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입니다. 구조에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게 가져갈 수 없는 게 재용이처럼 높은 곳에서 고립된 친구들의 사례라고 합니다.

간판처럼 위에서 먹이를 공급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나무 위처럼 먹이를 공급하기 어려운 곳에 고립돼 있다면 구조에 들어야 하는 시간은 더욱 촉박해집니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높은 곳에 고립된 친구들을 구조할 때는 아무리 많이 걸려도 5일 안에는 구조를 완료하려고 합니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

그렇기에 재용이처럼 높은 곳에 고립된 친구들을 구하고 싶다면, 우선 먹이 공급을 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합니다. 갑자기 구조하려고 하면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를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 대부분이니까요. 송 팀장은 “일단 먹이와 물을 공급하면서 생존을 도모하고, 구조 전문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재용이 같은 경우는 수개월간 목격자가 위에서 내려주는 음식을 익숙하게 받아먹은 덕분에 포획틀 설치도 쉬웠다고 합니다. 위에서 무언가가 내려오더라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포획틀에 마련된 먹이를 먹으려 들어가는 시간도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렇게 구조된 재용이는 건강검진을 받고 보호소로 향했습니다.

“사람보다는 고양이가 편해요”
재용이는 아직 보호소 적응 중

보호소에 들어온 재용이는 여전히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을 향해 공격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려워서 얼어붙기 일쑤였습니다. 인기척이 조금만 느껴지면 구석으로 숨어버렸고,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이건 어느 정도 순치가 진행된 거라고 합니다. 이현경 동물자유연대 온캣 동물관리팀장은 “예전에는 재용이 발톱조차 깎아주기 어려울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지금은 몸을 붙들고 나면 발톱을 깎아줄 수는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이 팀장은 “재용이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활동가들이 악역을 맡아가며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재용이에게 ‘사람의 사랑’을 전하는 역할은 가끔 보호소를 찾는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재용이가 싫어하는 건 활동가의 몫이 되는 것이죠.

구조 이후 근황이 알려지기까지 걸린 4개월, 활동가들은 재용이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최대한 ‘귀찮게 하지 않기’를 택했습니다. 생활 공간을 정돈해 주고, 발톱을 깎아주는 기본적인 관리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재용이에게 자극을 주지 않는 것이죠.

그 결과 재용이는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않았지만, 함께 사는 고양이들과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호소 룸메이트 ‘단풍이’와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지요. 가끔 보호소에서는 복도를 일부 개방해 고양이들에게 활동량을 높이는 시간을 주는데 이때도 단풍이가 먼저 정찰(?)을 하고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재용이가 따라나와 즐겁게 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후다닥’ 묘사로 돌아가버리지만요.

전문가들이 보기로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심하게 사람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 조금 더 천천히 지켜보며 다가가자고 했어요. 저희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재용이가 정말 크게 마음을 열어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얼마 전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신부전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이 친구는 보호소에 들어온 지 12년이 되도록 사람 손을 한 번도 못 타고 떠났어요. 그런 걸 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 말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4개월 만에 어느 정도 변화를 보였다는 건 저희 입장에서는 큰 변화예요.
이현경, 동물자유연대 온캣 동물관리팀장

물론 최선은 가족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재용이를 도와줄 결연 가족을 찾고 있지만, 언젠가 재용이도 가정집에서 행복하게 살 날이 오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근황을 보고 재용이에게 관심을 갖는 분이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재용이를 바라봐야 할까요?

느긋하게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한 공간에 있어도 재용이를 애써 안으려 하거나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안달 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재용이에게 좋을 것 같아요. 다가가고 교감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한번 유대감이 형성되면 더 깊게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 고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서요.
이현경, 동물자유연대 온캣 동물관리팀장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