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이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중심으로 경영권 분쟁을 봉합하기로 했지만, 주주와 임직원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창업주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신 회장과 뜻을 같이한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조직 구성과 경영 개입 정도에 엇박자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경영과 창업가 중재를 동시에 해야 하는 신 회장의 조율 과정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그룹 정상화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임 이사 측은 신 회장과의 공동 입장이라면서 "가족 간 불협화음이 극적으로 봉합됐다. 두 형제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책임경영과 전문경영, 정도경영을 하이브리드 형태로 융합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임 이사와 신 회장은 전날 직접 만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료 배포 직후 신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형제와 뜻을 모아 화합하기로 한 것은 맞다"면서도 형제가 경영에 참여하는지에 대해선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갈등 봉합과 형제의 경영 참여를 구분 지은 것이다.
임 이사 측은 보도자료에서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창업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의 의결권을 받은 신 회장과 임종윤·종훈 형제가 동일선상에서 경영 방안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자신의 결정에 형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임 이사의 '분쟁 종식 선언'과 달리 신 회장은 아직 합의할 부분이 상당히 남아 있다는 입장 차를 드러낸 셈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재자(신 회장)의 결론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모녀 측과 형제 측의) 물밑 작업이 치열할 것"이라며 "좋은 자리를 선점해 둬야 2차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주주와 임직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방향키를 쥔 신 회장이 공식석상에 나서지 않은 채 불투명한 경로로 입장을 전하고 있는 상황이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주주총회 전 송 회장과 형제 간 수차례 논박에 이어, 회사의 미래가 신 회장의 인터뷰 기사로 오락가락하는 게 혼란스럽다"며 "아직 신 회장과 회사 간 공식 채널이 없어 향후 주총, 이사회 등 산적한 업무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미약품 관계자는 "오너 간 갈등에 많은 구성원이 이미 지쳐 있다"며 "빨리 안정화돼 제대로 투자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네이버 주주게시판에는 임 이사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 속 문구인 "모두가 승리했다"를 비꼰 "주주만 패배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업계에서는 신동국 경영 체제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경영권 분쟁이 끝난다 해도 오너 외 대리인 중심의 전문경영체제, 신 회장의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이해도, 중재 후 지분 매각 우려 등의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창업가가 2선으로 후퇴하면 고 임성기 창업주의 영향력이 감소해 '신약 명가'라는 한미약품의 강점이 약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사내에서 고조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임상시험을 완료해 보겠다며 대기업인 OCI그룹과 합병하려던 때와 비교하면 현 체제는 오히려 후퇴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너가 내세운 대리자가 경영하는 복잡한 구조라 주주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오너와 중재자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주주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불투명한 결정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