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우주 ‘별이 빛나는 밤’ [천문학자와 함께하는 우주 여행]

입력
2024.07.10 19:00
25면

편집자주

오늘날 우주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는 감상의 대상이다. 우주는 인간이 창조한 예술작품과 자연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보다 더욱 아름답고 신기한 천체들로 가득하다. 여러분을 다양한 우주로 안내할 예정이다.


밤 하늘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
돈 매클레인의 명곡 ‘빈센트’
반 고흐의 고통과 우주 느껴져

'별이 빛나는 밤'은 예술가의 우주이다.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이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89년 프랑스 남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것이다. 반 고흐는 생전에 가난한 화가였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 가격은 편당 수백억 원에 달하므로 이 그림의 가격도 천문학적일 것이다.

반 고흐는 밤하늘에 보이는 우주를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했다.

사이프러스 나무 오른쪽 언덕 위 낮은 곳에 비교적 큰 원이 있는데, 이는 새벽 동쪽 하늘에서 보이는 샛별(금성)로 추정된다. 샛별은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로 보이기 때문에 반고흐는 샛별을 이렇게 크게 그렸을 것이다. 오른쪽 위 구석에 있는 커다란 원은 달이다. 그믐달 주위에 있는 달무리를 둥글게 그렸다. 그리고 하늘 여기저기에 별 열 개를 각각 다른 크기의 원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반 고흐는 별의 크기를 실제 밤하늘에서 보이는 것보다 과장스러울 정도로 크게 그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별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일까? 반 고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그림 가운데에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보인다. 이 소용돌이는 나선은하를 연상시킨다. 1845년 영국의 로스(Rosse) 경은 망원경으로 본 소용돌이 은하(메시에 51)의 모습을 스케치로 남겼는데, 이 은하의 모습이 그림에 있는 소용돌이와 매우 비슷하다. 반 고흐가 소용돌이 은하의 모습을 알고 이 소용돌이를 그린 것일까?

소용돌이 은하를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은 환상적이다.

은하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구부러지면서 뻗어 나가는 나선 팔 두 개가 잘 보인다. 이 나선 팔에는 최근에 태어난 별들이 많이 모여 있어 다른 곳보다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 특히 나선 팔에서 붉게 보이는 곳은 태양보다 훨씬 무겁고 뜨거운 별들이 있는 곳이다. 나선 팔 오른쪽 끝에는 또 다른 은하가 연결돼 있다. 우리 은하도 소용돌이 은하에서 바라본다면 소용돌이 은하처럼 보일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황나래 박사와 필자는 허블망원경 관측자료를 분석해 이 소용돌이 은하에서 2,000개가 넘는 성단을 발견하고, 이들의 특성과 은하의 진화 과정을 연구한 바 있다.

2023년에 제임스웹 망원경의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소용돌이 은하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나선 팔뿐만 아니라 은하의 중심부까지 연결되는 소용돌이의 모습이 매우 자세히 보인다. 이 사진은 그림에 비유하자면 세밀화에 해당된다. 이 은하에서는 2020년 토성보다 약간 작은 외계행성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우리 은하 바깥에서 최초로 발견된 외계행성이다. 외계행성은 거의 모든 은하에 있지만, 실제로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은하는 2,70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은하의 모습을 오늘날 이렇게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1970년 가을 어느 날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레인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서 떠오르는 노래 가사를 종이 봉투에 펜으로 적었다.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Vincent(빈센트)’다. 노래 가사는 'starry, starry night(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로 시작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멜로디는 매우 감미롭지만 가사 내용은 반 고흐가 생전에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빈센트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예술가로서의 한 인간과 그의 우주가 그려진다. 미술가의 우주가 음악가의 손에서 재탄생된 것이다. 이 귀중한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 봉투는 2020년 추정 가격이 20억 원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우주에서 각자 다른 길로 여행하고 있지만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