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5월 이후 두 번째다. 이로써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15회로 늘었다.
대통령실은 21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위헌적 요소가 있는 법안을 야당이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시 국회로 돌아간 법안을 야당이 재표결에 부쳤지만 찬성표가 모자라 폐기됐다. 이번에도 법안 강행처리→거부권→재표결의 수순을 밟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어제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로 실체적 진실과 책임 소재가 밝혀진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순직 해병 특검법은 이제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해병의 안타까운 순직을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악용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순방 중이라 재가는 전자결재로 이뤄졌다.
당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점으로 16일이 꼽혔다. 윤 대통령 순방 복귀 후 첫 국무회의가 예정된 날이다. 하지만 경찰이 특검법의 표적인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에 대한 직권남용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불송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거부권의 명분이 커지면서 굳이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앞서 4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정부는 '거부권 명분 쌓기'에 주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특검법을 '위헌에 위헌을 더한 법'으로 규정하며 "지난 21대 국회에서 의결된 순직해병특검법안은 국회 재의결 결과 부결돼 폐기됐다"면서 "국회가 이를 재추진한다면 여야 간 협의로 문제가 된 사항을 수정·보완해야 하는데 야당은 오히려 위헌성을 더 가중시킨 법안을 또다시 단독 강행처리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법안에 △기한 내 특검 미임명 시 임명 간주 규정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특검의 공소 취소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한 총리는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재표결 시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국회의원 300명 전원 출석할 경우, 법안이 통과되려면 108명인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8명 이상 이탈해야 한다.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제3자 특검법'을 제안하긴 했지만, 국민의힘 내부 기류는 야당 주도 특검법에 동참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고하다. 따라서 당장 재표결에 나서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