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고기 냄새' 나는 배양육, 식탁엔 언제 오를까... 태동하는 '세포농업' 시대

입력
202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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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진, 향기물질 입힌 배양육 선보여
기후변화·육류수요 잡으려면 기술개발 필수
관련 지침 내놓은 식약처... 제품 허가 길 터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고기인 '배양육'에 진짜 고기와 같은 풍미를 더하는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찾아냈다. 진짜 고기를 구웠을 때와 비슷한 냄새가 나게끔 세포 성장 과정에서 향을 첨가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배양육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세포를 이용해 고기를 얻고 농작물까지 재배하는 '세포 농업'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기대가 나온다.

누룽지 사탕 같은 고소한 냄새

홍진기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배양육의 향을 끌어올리는 기술을 개발해 1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식물성 재료로 모양과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대체육과 달리 배양육은 동물의 세포를 채취해 인공적으로 키운 뒤 조직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소·닭·돼지뿐만 아니라 생선까지 다양한 동물 배양육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은 고온에서 고기를 구우면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육향을 뿜어내는 '마이야르 반응'에서 단서를 얻었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면 수많은 향기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 중 한 가지를 택해 배양육에 결합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가공된 젤라틴(젤마)으로 배양육의 뼈대(스캐폴드)를 제작했다. 여기에 화학반응으로 향기 물질을 결합해 일종의 '고기 냄새 품은 스캐폴드'를 만든 다음, 이 안에 소 근육세포를 넣어 키웠다. 실제 마이야르 반응을 모사하기 위해 연구진은 150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스캐폴드에서 향이 뿜어져 나오게끔 설계했다.

동물 근육세포를 성장시켜 만든 조직은 주성분이 단백질이기 때문에 가열하면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연구진은 여기에 고기 특유의 향을 내는 화학물질을 직접 추가해 관능적 요소를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홍 교수 연구실을 직접 찾아 연구진이 사용한 향기 물질의 냄새를 맡아보니 누룽지 사탕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연구진은 다양한 형태의 배양육에 육향을 첨가하거나, 여러 냄새 물질을 섞어 한 번에 발산되게 하는 등의 후속 연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앞서 연구진은 쌀로 만든 스캐폴드에 소 배양육을 키운 '소고기 쌀'을 선보인 바 있다. 이미래 연구원은 "배양육은 상업성과 연관성이 커 향이나 맛 같은 관능적 특성이 중요하다"며 "실제 고기에서 나는 향을 똑같이 모사할 수 있도록 여러 향미를 스캐폴드에 결합하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2~6년 뒤면 배양육이 식탁에"

지금까지 배양육 연구는 고기의 '형태'를 구현하는 데 집중돼왔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향과 식감을 최대한 고기와 비슷하게 입히는 쪽으로 기술 트렌드가 확장되고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 AT커니는 2040년 세계 배양육 시장 규모가 6,300억 달러(약 860조 원) 수준까지 성장해, 전체 육류 시장의 3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싱가포르·미국·이스라엘에선 이미 판매 허가가 이뤄져 시중에서 배양육 구매가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스페이스에프, 씨위드 등 여러 스타트업이 배양육 개발 경쟁에 나섰다.

기후위기 속 증가하는 육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배양육 기술 향상은 필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육류 생산량은 4억5,500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일부를 배양육으로 대체한다면 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땅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조철훈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앞으로는 세포를 통해 농산물을 만드는 '세포농업'이 발달할 것이고, 배양육이 첫 관문"이라며 "배양육은 뼈나 내장 등 폐기물 없이 육류를 생산할 수 있어 자원 활용이나 환경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식탁에서 쉽게 배양육을 접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높은 가격이다. 도정태 건국대 KU융합과학기술원 줄기세포재생공학과 교수는 "세포 배양에 필요한 비용을 낮추고,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3D(차원) 프린팅이나 스캐폴드를 이용해 만든 배양육은 고기 부분 비율을 높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올해 4월 국내 스타트업 티센바이오팜이 세계 최초로 지방과 근육이 섞인 덩어리 형태의 배양육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새로운 종류의 식품이라 제도적 합의도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8일 '세포배양식품원료 한시적 기준 및 규격 제출자료 작성 가이드'를 내놓으며 배양육 허가를 위한 문을 열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신기술이다 보니 과거에는 어떻게 안전성을 입증할지, 어떤 자료를 제출할지 전혀 몰랐다면 이제는 방법이 정립된 것"이라며 "업체가 이번 지침에 따라 충분히 안전성을 입증하면 식약처는 외국 사례나 연구 논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허가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양육의 공식 명칭과 제품 내 표시 방법에 대해선 차차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인공 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줄이는 것도 과제다.

박유헌 동국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안전성이 담보된 배양육을 만나는 건 1~2년 안에 가능하겠지만,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최근 여러 기업이 배양육 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짧게는 2~3년, 길게는 5~6년 뒤 배양육이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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