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존재들의 세상

입력
2024.07.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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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밀란 쿤데라- 2

(이어서) 쿤데라는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까지 고국 체코에서 공산당 입당-반당 행위-당적 박탈을 2차례 반복했다. 1970년 추방의 직접적인 원인은 1968년의 ‘프라하의 봄’에 가담한 까닭이었다. 그는 소비에트 해체 이후 체코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의 동지였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 당시 쿤데라와 하벨은, 1968년의 쿤데라-하벨 논쟁이 보여주듯 썩 잘 맞는 사이가 아니었다. 단적으로 말해 쿤데라는 과정을 중시하며 시민들이 보여준 용기 자체로 프라하의 봄은 기억될 만하다고 평가했고, 목표 지향적이던 하벨은 침략의 희생자라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두는 걸 못마땅해했다.

프랑스 망명 후 쿤데라는 두 번째 소설(‘생은 다른 곳에’, 1969)부터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체코 반체제 출판사가 아닌 갈리마르 등 저명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그의 행보는 하벨로 대표되던 자국 내 반체제 인사들에겐 출세에 눈먼 변절이자 배신이었다. 목숨을 걸고 투쟁한 그들에겐 아이러니와 농담을 앞세운 쿤데라의 풍자 역시 하찮고 경망스러웠을지 모른다.

그의 이름이 노벨상 후보로 가장 활발히 호명되던 1980년대 체코 문학계는 그를 직간접적으로 폄하하며 또 다른 체코 작가인 민족 시인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Jaroslav Seifert, 1901~1986)를 집단 청원했다. 그는 1986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억지스럽지만 어떤 이들은 쿤데라의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과한 집착이 20세기 페미니즘과 21세기 ‘미투 운동’ 정서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이라면 은밀한 죄의식을 갖고 탐독할 만한 내용들이 없지 않지만, 대개의 비평가들은 쿤데라의 성 역시 전체주의적 억압에 대한 저항과 풍자의 장치로 여긴다.

말로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집단의 뜻을 추종하고 무리에 편승하는 게 안전하다는 걸 너무 잘 학습해버린, 그래서 제 존재가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지 알 수 없게 된 이들이라면 그의 농담이 얼마나 우스운지도 어쩌면 모를 것이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