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만 틀면 고물가시대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지갑 열기 겁나는 세상이다. 이제는 점심 한 끼 먹으려면 1만 원은 들고 나가야 하고, 마트에 가서 며칠 먹을 식재료만 담아도 10만 원은 우습게 나오는 세상이다. 비싸다고 생각은 하지만 먹지 않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으니 마냥 지갑을 닫고 배고픔을 참으며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가가 오르면서 일반 개개인의 삶도 퍽퍽해졌지만 더 고통을 겪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국방’이다. 명백한 위협이 존재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면 무기를 사야 하는데 무기 가격 오르는 추세가 생필품 물가 상승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가파르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오랫동안 평화와 군축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의 방위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생산 설비와 인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각국이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무기를 지원하는 한편으로, 재무장을 시작하자 거의 모든 무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1발에 1,000~1,500달러 선이었던 155㎜ 포탄 가격은 5,000~8,000달러로 폭등했고, 1발당 7만~8만 달러 정도였던 ‘재블린’ 미사일도 이제는 12만~15만 달러는 줘야 구입할 수 있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가 1대에 440억~480억 원 정도 주고 샀던 F-16 전투기는 이제 최신 모델이 1,000억 원은 가볍게 넘어가는 물건이 됐고, 다음 세대 전투기인 F-35는 버전에 따라 2,000억 원까지 줘야 한다.
군함 역시 큰 폭의 가격 상승이 있었다. 40여 년간 주력 전투함으로 운용해 온 울산급 호위함은 1980년대 당시 1척에 380억 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를 대체하는 신형 호위함은 1척에 4,000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조달되고 있다. 최근 6척 도입이 확정된 4,300톤급 차기 호위함, ‘FFX 배치-IV’는 1척에 5,400억 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5,500톤급의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이 1척에 3,900억 원 정도에 조달된 것을 생각해보면 군함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체감이 된다.
군함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비싸다고 해서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처럼, 군함도 비싸다고 도입을 포기할 수는 없다. 특히 3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해양국가인 우리나라는 해군력이 곧 국가의 존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아무리 오른다고 해도 최소한의 해군력은 구비해 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해군력’은 물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량도 중요하지만 개별 군함의 성능이 실존 위협에 맞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도입되고 있는 ‘FFX 배치-III’ 충남급이나 앞으로 건조될 FFX 배치-IV는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세련된 전투함이다. ‘미니 이지스’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4면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를 갖춰 360도 전 방향을 사각지대 없이 감시할 수 있고, 소나나 전자전 체계도 비교적 충실히 갖춰져 있다.
문제는 ‘무장’이다. 신형 한국형 호위함들은 ‘이지스급’이라는 고성능 레이더를 달아놓고 방공무장은 자체 방어 정도만 가능한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만 갖추고 있다. 충남급과 FFX 배치-IV에 탑재되는 4면 고정형 다기능 위상배열레이더는 탄도미사일 대응을 위해 개발된 L-SAM의 다기능레이더(MFR)를 기반으로 개발된 S밴드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다. 기반 레이더가 탄도미사일을 대상으로 300㎞ 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지고 있는 고성능 레이더이기 때문에 한국형 호위함에 들어가는 레이더 역시 이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탐지거리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지스함에 준하는 레이더 성능이다. 육상의 L-SAM이 이러한 레이더 성능을 이용해 최대 300㎞급 요격거리를 갖는 것에 비해 한국형 호위함의 요격 능력은 형편없다. 탑재되는 함대공 미사일이 사거리 20㎞급 ‘해궁’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신형 한국형 호위함들은 한국형 수직발사기(KVLS)를 갖추고 있고, 덩치가 커진 만큼 여유 공간도 제법 있는 편이어서 중·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실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KVLS는 미국의 Mk.41에 필적하는 덩치를 가진 VLS이니만큼, 여유 공간에 Mk.41을 설치해 SM-2나 SM-6와 같은 미사일을 탑재할 수도 있고, VLS 숫자를 늘려서 현재 개발 중인 ‘함대공유도탄-II’를 실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형 한국형 호위함에 들어가는 레이더는 탄도미사일 대응용으로 개발된 L-SAM용 레이더이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미사일만 실어주면 한국형 호위함들은 미국의 최신 이지스함과 마찬가지로 탄도미사일방어 능력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선진국 군대가 무기체계를 교체하면서 운용 사상과 교리, 전술을 완전히 갈아엎는 것과 달리 한국군은 정해진 사상과 교리·전술 안에서 무기 그 자체만 바꾸려는 경향이 강하다. 선진국 군대의 신무기 도입이 군사력을 ‘혁신’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한국군의 신무기 도입은 낡은 장비를 ‘교체’하는 개념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신형 한국형 호위함들이 대체하고 있는 울산·포항급은 1960~1980년대 기승을 부렸던 북한의 간첩선을 상대하기 위해 함포에 집중한 기형적 설계의 배들이었다. 당시에는 공중 위협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제대로 된 대공 무장이라는 것은 없었고, 오로지 고속 성능과 근접 화력에만 모든 능력치를 쏟아부어 만든 이 배들은 함대함 미사일이 오가는 현대적인 해상 전투 수행과는 맞지 않는 낙후된 개념의 군함이었다.
이후 북한이 장거리 대함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중국이 새로운 위협으로 급부상하면서 대공 방어 능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군 당국은 신형 호위함을 낡은 호위함·초계함 대체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차기 호위함 배치-I로 배치된 인천급은 최소한의 근접방공 정도만 가능한 수준으로 등장했고, 배치-II(대구급) 역시 단거리 방공 정도만 가능한 스펙으로 완성됐다. 배치-III과 IV는 ‘한국형 미니 이지스’라고 선전됐지만, 배치-II와 같은 수준의 무장만 탑재함으로써 호위함에 대한 군의 인식이 1980년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줬다.
해군은 한국형 호위함에 중·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이 들어가면 상위 체급의 전투함 사업 추진 당위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한국형 호위함이 중·장거리 방공 능력은 물론 탄도탄 요격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 이보다 한 체급 위인 한국형 구축함 KDDX 사업 추진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제한된 예산에서 무기 도입 우선순위를 정할 때 군은 가장 취약하면서 시급한 분야에 가점을 준다. 해군이 고성능 신형 호위함을 도입하면, 차후 합참과 국방부에서 사업 우선순위를 심의할 때 KDDX 사업이 뒤로 밀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작전요구성능(ROC) 수립 과정에서 이상할 정도로 낮은 목표치가 설정되는데,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해군은 “이렇게 안 하면 사업이 못 간다”고 대답한다.
지금은 북한도 중·장거리 대함 미사일은 물론, 대함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시대다. 초음속·스텔스 대함 미사일은 물론, 극초음속 미사일과 다탄두 대함 탄도미사일도 점점 보편화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멀리서 많이 보고 여러 개를 동시에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 방공함이 함대에 1, 2척만 있어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이지스급 성능의 중·장거리 방공 능력을 갖지 못한 전투함은 생존이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고작 20㎞ 정도 범위만 방어할 수 있는 해궁과 같은 미사일에 방공을 의존하는 대구·충남·FFX 배치-IV와 같은 호위함은 만들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플랫폼은 충분한 확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VLS를 추가 설치하고 중·장거리 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하면 얼마든지 현대전에 적합한 전투함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이 작업에 그렇게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한국형 호위함을 진정한 바다의 수호자로 만들 것인지, 100여 명의 승조원이 타는 떠다니는 배로 만들 것인지 이제 군은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