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스키드마크(급브레이크 작동으로 인한 타이어 자국)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차량 동승자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사고기록장치(EDR)를 1차 분석한 경찰은 브레이크 작동 기록이 없다고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EDR에는 사고 직전 5초 간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등의 차량 작동 상황이 저장된다.
3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브리핑을 통해 "사고 현장에선 스키드마크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키드마크는 보통 차량의 제동장치가 급격하게 작동했을 때 도로에 남는 물리적 흔적이다. 타이어의 고무 성분이 노면에 찍혀서 나타난다. 경찰은 애초 "스키드마크가 있었다"고 했다가 약 1시간 뒤 "가해차량이 정차했던 위치까지 도로에 긴 흔적이 남았지만, 부동액·엔진오일·냉각수가 흐를 때 배출되는 물질로 밝혀졌다"고 정정했다. 사고 당시 운전자 차모(68)씨와 동승한 아내도 전날 참고인 조사에서 "브레이크 제동장치가 안 들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다만 스키드마크의 부재가 곧바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급발진 정황)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신식 차량들은 (급제동을 걸어도) 스키드마크가 잘 남지 않아 주로 영상으로 판별한다"고 설명했다. 급제동 시에도 조향장치를 작동하도록 해주는 브레이크 잠김방지 시스템(ABS) 장착 차량의 경우, 스키드마크가 잘 남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주행에서는 스키드마크가 나타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지막에 (가해차량이) 정차를 했고, 스키드마크도 없었다는 건 차량이 적절히 기능을 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급발진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소폭 올라간 셈"이라고 짚었다.
현재 경찰은 사고 당시의 가속·제동장치 등의 작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해차량 차체와 EDR 데이터를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국과수 판단이 나와야 하지만, 경찰은 내부적으로 사고 차량에서 브레이크를 밟아 작동 시킨 정황이 없다고 1차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정황도 폐쇄회로(CC)TV와 가해·피해 및 주변 차량 블랙박스 등 영상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찰은 차씨가 몰던 차량이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서행하다가 출구 앞 언덕 턱부터 가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방통행길로 진입한 차량이 가속 상황에서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로 변경을 하는데 이후 뒤쪽 브레이크등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영상도 공개됐다. 차씨가 역주행을 뒤늦게 알아채고 당황해 가속장치를 제동장치로 착각했을 가능성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충분히 염두에 두고 수사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사고가 발생한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 사고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차씨 부부가 차 안에서 싸움을 한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부상자가 1명 더 파악돼, 총 사상자 수에도 변동이 생겼다. 추가된 부상자는 사고 직후 병원에 후송된 다른 피해자와 동행하느라 집계에서 빠졌는데, 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로써 이번 사고와 관련된 사상자 수는 사망 9명과 부상 7명(차씨, 아내 포함)으로 늘었다.
앞서 차씨의 제네시스 차량은 1일 오후 9시 27분쯤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뒤, 호텔 앞 사거리에서 일방통행로인 세종대로18길 쪽으로 역주행하며 가속했다. 차량은 200여m를 내달려 인도를 들이받았고, 이로 인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