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배우자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관련된 영상이 확산됐다. 슈퍼카 부가티 ‘투르비옹’ 모델도 관련돼 있다. '투르비옹'은 전 세계에서 250대만 한정 생산되는 고급 모델로, 가격은 480만 달러(약 66억 원) 수준이다. 지난달 7일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행사 참석차 파리를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에게 부가티 측이 비공식 거래를 제안했고, 젤렌스카 여사가 구매했다는 게 해당 영상의 골자다.
근거도 제시됐다. 한 부가티 지점에서 근무한다는 남성 딜러가 영장에 등장, 계약서와 송장 파일까지 제시하며 이같이 주장한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2년 반가량 이어지는 와중에, 영부인의 ‘사치성 해외 쇼핑’은 우크라이나 정권의 도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만큼 파장이 컸다.
그러나 가짜였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허위 ‘딥페이크(영상·이미지·음성 조작물)’였다. 이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문제의 영상은 엑스(X)에서 24시간 만에 조회수 1,800만 건을 기록했다. 친(親)러시아 인플루언서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퍼 나른 탓이다. 부가티는 공식 성명을 내고 “위조 및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2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해당 영상 출처는 ‘숨겨진 진실’이라는 프랑스 웹사이트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AI로 언론 보도를 교묘하게 짜깁기해 홈페이지 화면을 채운 허위 사이트다. 분석을 맡은 미 사이버보안업체 ‘레코디드 퓨처’ 등은 “영상 속 딜러부터 송장 사본까지, 모두 조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됐다”고 CNN에 전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펼쳐 온 정보전의 전형적 수법이라고 본다. 일단 유튜브에 딥페이크 영상을 올리고 가짜 언론 사이트를 만들어 기사화한 뒤, 포섭한 인플루언서들을 이용해 살포하는 식이다. ‘전선에서 죽어가는 군인,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외면한 채 부패한 대통령 영부인은 슈퍼카 쇼핑에 여념이 없다’는 서사를 만들어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흔드는 게 목적이다.
과거에도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딥페이크 공작’은 많았다. 2022년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자’고 말하는 가짜 영상·음성이 퍼졌던 게 대표적이다. 젤렌스카 여사를 노린 딥페이크도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110만 달러(약 15억 원) 상당의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 보석을 샀다는 허위 게시물이 온라인에 퍼지는가 하면, 조작된 여권 사진과 함께 대통령 부부가 조국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탈출하려 했다는 헛소문도 떠돌았다.
올해 2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을 연기한 것을 두고 ‘서방 지원이 절실한 젤렌스키 정부가 마크롱 암살 계획을 세우고 러시아에 누명을 씌우려다 들켰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가짜 뉴스도 등장했다. 이는 프랑스 매체 ‘프랑스24’의 보도로 둔갑해 더욱 확산했는데, 실제로는 가자지구 전쟁 전황을 전하던 앵커의 목소리를 이용한 딥페이크 영상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