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수하는 존재...가해자 비난하다 끝나면 시청역 역주행 사고는 반복된다"

입력
2024.07.05 14:00
10면
[책과 세상]
'사고' 파고든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
"사고는 불운? 본질은 시스템 위기"
"대부분 사고 예측과 예방 가능해"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9명이 역주행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는 매년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2,551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하루 평균 사망자는 6.8명. 2019년부터 5년 동안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는 5,232명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왜 사고에 무덤덤해 보이는가. 사고를 처음부터 막을 길은 없는가.

'사고는 없다'는 그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인 미국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는 '사고는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생각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무감각해진 이들에게 경고한다. 사고를 "누군가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을 맞이한 일"로 치부하는 한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이제 '사고'라고 하지 말자. '사고였다'는 말이 들리면 이를 경고음으로 여기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계기로 삼자. 어떻게 될 것인가? 왜 그런 것인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인간의 실수는 피할 수 없다"

저자는 2006년 12월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이후 '사고'의 실체를 파고들었다. 그는 사고 요인을 인간의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으로 구분한다. 가령 과속 차량이 사람을 치는 것은 인간의 과실이지만, 자동차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게 설계된 것은 위험한 조건이다. 인간의 과실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 이들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다"고 보지만, 저자는 "인간이 실수하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실을 예상하고 그것이 생사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사고 조사를 할 때도 누가 실수를 했느냐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기보다 누군가의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지도록 한 위험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고는 위험한 조건들이 켜켜이 쌓인 끝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있는 권력과 에너지를 찾아

책은 미국 사례들을 인용하지만, 각종 사고와 재해가 반복되는 한국의 현실과 연결해도 자연스럽다. "모든 사고를 인적 과실로 설명하기 이전에 시스템의 실패와 구조적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숙고한다면, 시청역 역주행 사고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이 많은 운전자' '이기적인 운전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방하는 것은 분풀이에 불과하다. '사고 지점 인근 도로 설계엔 문제가 없었는가' '보행자 보호 인프라는 제대로 마련돼 있었나' '가해 차량에 안전장치는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보다 근본적 질문을 해야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한 건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든 요인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신속한 대응을 할 것이냐' 아니면 '손 놓고 있다가 다시 희생자가 발생할 때까지 세월을 허비할 것이냐'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인식과 행동을 통해 선택할 문제다.

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구조적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뉴욕 '안전한 거리를 위한 가족들'의 에이미 코언은 아들이 도로를 건너다 숨진 이후 뉴욕시의 차량 제한 속도를 시속 48㎞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관철시켰다. 2년 후 같은 거리에서 차에 치인 아이는 코언의 노력 덕에 죽지 않았다.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저자는 이렇게 당부했다. "나는 이것을 사랑과 분노의 행동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자 우리가 가진 전부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