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 관리가 필요한 한·중 관계

입력
2024.07.01 00:00
26면

편집자주

국제시스템이 새로운 긴장에 직면한 이 시기 우리 외교의 올바른 좌표 설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40년간 현장을 지킨 외교전략가의 '실사구시' 시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9년 만 서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관계개선 기대 많지만, 여전한 장애물
한중 간 불균형 인정 및 해소가 우선

지난 5월 26, 27일 서울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실로 4년 반 만에 개최된 회의이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거둔 의미 있는 회의였다. 그런데 그 계기에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이 3국 회의보다 더 큰 국내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였고, 일견 이해가 된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특히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중 관계가 너무 소원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던 차에 리창 중국 총리가 9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리 총리는 윤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경제 교류, 나아가 안보 대화에 대해서까지 소중한 합의를 이뤘다. 많은 시민이 안도의 느낌을 받고, 한중 관계에 괄목할 진전이 있기를 기대했다. 필자도 모 일간지 기사의 제목처럼 '한중 관계에 다시 봄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봄바람이 불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한중 관계의 현주소라고 생각된다. 첫째, 한중 간 합의는 '과정'이지 '내용'에 대한 합의가 아니다. 실질적 내용에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한중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재개해 문화·관광·법률 서비스 개방 문제를 협상하기로 했다. 사드 사태 이후 부과된 한한령으로 어려움을 겪은 분야가 문화와 관광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서비스 개방 협상을 통해 어려움의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중국의 공식 입장은 한한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것은 FTA 협상 개정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급망 문제에 대한 양국 간의 기존 협력체를 활성화하고, 수출 통제 대화체를 새로이 출범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중 간의 '동상이몽'이 현실이다. 우리 관심은 원자재와 핵심광물의 안정적 공급인 데 비해, 중국의 관심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제품, 장비, 기술 공급의 안정화에 있다. 모두 미중 관계와 미국의 수출 통제 체제에 밀접히 연결된 문제들이다. 한중 정상회담 직후 다시 불거진 요소수 문제를 보며 기시감을 떨칠 수 없다.

이번 회담에서 외교 차관과 국방부 국장이 같이 참여하는 외교 안보 대화체를 마련하기로 한 것도 좋은 일이다. 그 최초 회의가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 직전에 이뤄졌고, 북러 군사 동맹 복원, 대량 살상 무기 기술 이전 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던 우리나라에는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내놓은 평가는 많은 국가를 경악하게 만든 푸틴의 이번 방북이 북러 양국의 교류·협력과 발전을 위한 정상적인 방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한중 양국 지도층 간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성찰과 결단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양국이 서로를 상대하는 기본 입장에 큰 불균형이 있어 보인다. 윤 정부는 2022년 12월 밝힌 인·태 전략을 통해 한국이 안보와 경제 발전의 대전제인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에서 출발하되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비해 중국은 한중 고위급 인사 교류에 극히 인색한 데서 보듯 한중 관계를 경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수시로 '전랑외교'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중 양국 간에 존재하는 이러한 불균형을 인정하고 해소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돼야 5월 26일 한중 회담에서 합의한 과제들에 대한 진전을 이루고, 한중 관계에 봄바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안호영 전 주미대사·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