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급체'했나... 집행률 50% 미만 사업 수두룩

입력
2024.06.2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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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 사업 중 12개 집행률 50% 미만
황정아 의원 “준비 없이 예산만 늘려“
과기정통부 “하반기에 집행 비중 커”
연구현장 “해외 협력은 내실이 중요”

지난해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크게 증액해 논란을 불렀던 '글로벌 R&D' 사업들이 실제 집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R&D 예산은 정부가 내년에도 늘리겠다고 밝힌 만큼, 내실 있는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과기정통부가 관리하는 글로벌 R&D 세부사업 35개 중 12개 사업에서 실제 글로벌 협력과 관련한 내역사업들의 실집행률이 지난 20일 기준 50% 미만으로 집계됐다. R&D는 단위사업→세부사업→내역사업 순으로 세분화된다. 문제가 된 내역사업들에 배정된 예산은 1,346억3,700만 원인데, 실제로 집행된 것은 311억1,940만 원(23.2%)이었다.

황 의원은 "한 해의 절반이 흘렀는데 집행률이 이렇게 저조한 것은 글로벌 R&D 예산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급격히 확대한 게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R&D 예산은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국제협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밝힌 뒤, 2023년 5,075억 원에서 올해 1조8,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전체 R&D 예산이 10% 넘게 삭감됐던 것과 대비된다(관련기사 ☞ 과기부 지침에 두 달 새 글로벌 R&D 예산 3.5배... "돈도 기술도 흘러 나갈라").

황 의원은 "내실화 없이 '글로벌' 단어만 붙인 R&D 예산 증액에 현장은 혼란 그 자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연구자들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조변석개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R&D 지원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하반기에 실시되는 사업들이 있어서 통계가 낮게 집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예산 편성 단계에서 이미 하반기에 실시하기로 한 사업들이 많다. 예산 집행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황 의원은 "하반기에 실시하기로 한 사업 비중이 큰 것 자체부터가 예산을 졸속으로 편성했다는 증거"라며 "예산의 80% 가까운 돈을 몇 개월 동안 몰아 써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글로벌 R&D 예산은 내년에도 늘어나 총 2조1,000억 원이 배정될 전망이다. 연구 현장에서는 내실 있게 예산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의 한 중견 연구자는 "글로벌 협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번처럼 급작스러운 추진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 연구에 꼭 맞는 협력 상대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당장의 연구비가 급하니 우리가 상대 연구자와 대등한 관계가 아닌 '갑을관계'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장도 "글로벌 R&D 연구는 연구자들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것인데, 지나치게 관 주도로 이뤄져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지혜 기자
이현주 기자